가을헌화가
벼랑 끝 바윗자락
갓털로나 닿았을까
굽어봐도 천야만야
갈 곳 없는 쑥부쟁이
실눈썹 등산 여인이
저 꽃 그리 탐한다지
낯 붉힌 눈길만큼
부끄릴 이 가뭇없고
고개 숙인 촌로 하나
낌새 하마 차렸는지
한 아름 가을을 엮어
먼 발치에 두고 가네
벼룻길 여린 햇귀
빗금 치듯 뜸이 들고
잡은 손 암소 놓고
신라 천년 감아오나
우수수 나는 꽃씨가
수로부인 뒤를 밟네
/정평림
수수한 쑥부쟁이께로도 가을볕이 영근다. '천야만야 갈 곳 없는' 꽃들도 가슴 떨며 기다릴까. 게서 나고 자란 '쑥부쟁이'나 '등산 여인'이나 흔히 만나기는 매한가지. 하지만 꽃을 꺾어다 바치는 순간 둘은 귀한 존재가 된다. 아니 헌화의 손까지 합하면 셋이 새로운 빛을 얻는 것이다.
수로부인에게 꽃 바친 노인의 '헌화가'. '잡은 손 암소 놓고'에 앉힌 '헌화'가 가을 속에 그윽하다. 바야흐로 한가위니 헌화가야 많을수록 좋겠다. 집집이 차례 모시느라 분주한 '부인'들에게 꽃 바치는 손 많아지면 웃음꽃도 환히 피리. 쑥부쟁이는 성묘길에도 많이 만나는 꽃. 오늘을 웃게 해주는 이에게 그리고 그리던 무덤에게 꽃 바치는 마음이면 한가위 달도 더 널리 빛나리.//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