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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고잠 (栢在高岑)

강현(姜鋧·1650~1743)의 벗  중에 청송 수령이 되어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전별의 자리에서 강현이 그를 위해 시 한 수를 써주었다. "한강 어귀 봄바람이 흔들려 나부끼니, 지는 볕에 이별 근심 무엇으로 달래보나. 정 사또의 고지식함 웃을 만하거니와, 잣과 벌꿀 보내줌을 괴이타 하지 마소.(春風搖落大江頭, 暮景那抛遠別愁. 堪笑鄭侯多固滯, 海松蜂蜜莫怪投.)"

 

정사또의 고지식함 운운한 것은 고사가 있다.    예전 정붕(鄭鵬·1467~

1512)이 청송 부사로 내려갔다. 영의정 성희안(成希顔·1461~1513)이 편지를 보내 그 고장에서 나는 잣과 꿀을 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 잣과 꿀 없이 돌아온 답장이 이러했다. "잣은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꿀은 민간의 벌통 속에 있습니다. 태수가 어찌 이를 얻겠습니까?(栢在高岑山頂上, 蜜在民間蜂桶中, 太守何由得.)"

 

정붕은 애초에 무오사화와 갑자사화 때 유배되었다가 중종반정 이후 성희안의 추천으로 왕의 부름을 받았다. 성희안과는 젊어서부터 친교가 있었다. 하지만 상경 중 간신배가 조정에 있음을 보고 병으로 사퇴하고 낙향했다. 그런 그를 붙들어 청송 부사로 제수한 것도 성희안의 주선이었다. 성희안은 친밀한 마음에 안부 겸해 보낸 편지에서 허물없이 부탁했던 것인데 무색하게도 이런 답장을 받았다. 하지만 성희안은 화내지 않고 깨끗하게 사과했다. 그의 대쪽 같은 성정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정붕은 뒤탈 없이 3년간 청송 부사로 재임하다가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

 

그러니까 위 강현의 시는  예전 정붕은  잣과 꿀을 보내달라는 성희안의 부탁을 고지식하게 거절했지만, 너는 가서 제발 그러지 말고 잣과 꿀 좀 보내주는 것이 어떠냐고 농담한 것이다. 정붕의 이야기가, 청송 고을 원이 되어 가는 사람에게는 늘 하나의 귀감처럼 전해진 일화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의 바른 처신은 이렇게 긴 그림자를 남긴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않는다. 원칙이 아니면 행하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안부 겸해 보낸 편지에 매몰찬 답장을 받았던 성희안도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주고받음에 피차 일말의 구차함이 없었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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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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