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엽갑(柳葉甲)은 버들잎 모양의 쇠미늘을 잘게 꿰어 만든다. 한 곳이 망가지면 쉬 흐트러져 쓰기가 어려웠다. 인조 때 대신들이 청나라의 제도에 따라 갑옷을 고쳐 만들 것을 건의했다. 임금은 새 갑옷이 예전 것보다 갑절이나 낫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굳이 있는 것을 훼손해가며 개조할 필요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국고의 낭비를 염려해서다.
방물로 납입되는 갑옷이 도무지 쓸모가 없으니 이 문제의 해결이 먼저라며 이렇게 말했다. "속담에 '관가 돼지가 배 앓는다(官猪腹痛)'고 했다. 누가 자주 기름을 칠하고 잘 보관해서 오래 사용하려 하겠는가?" 그러자 이시백이 자신도 이 갑옷을 하사받았는데 너무 무거워 입을 수가 없었다며 수긍했다. 예전 갑옷은 가볍고 보관이 용이해 가끔 기름칠만 해 두면 오래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제 물건이 아니라고 누구도 기름칠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두니 유사시에 쓰려 들면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관저복통(官猪腹痛)은 '관가 돼지 배 앓는 격'이란 우리말 속담을 한자로 옮긴 말이다. 관가에서 기르는 돼지는 배곯을 일이 없어 팔자가 편할 것 같지만 정작 배를 앓아도 아무도 보살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 되겠지, 누군가 하겠지 하는 사이에 아픈 돼지만 죽을 맛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구외이문(口外異聞)'에서 북경의 열 가지 가소로운 일(十可笑)을 소개했다. 황제 직속의 태의원(太醫院)에서 내는 약방문과 무고사(武庫司)의 칼과 창, 오늘날 검찰청에 해당하는 도찰원(都察院)의 법률 기강, 국자감의 학당, 한림원의 문장 등등을 꼽았다. 최고여야 할 국가기관들이 실상은 가장 형편없다는 뜻으로 한 우스갯말이다. 한나라 때 속담에는 '수재로 뽑고 보니 글을 모르고(擧秀才不知書), 효렴(孝廉)에 발탁하자 아비와 따로 산다(察孝廉父別居)'고 했다. 명실상부(名實相符)가 아닌 명존실무(名存實無)다. 이름뿐 실지는 없는 빈 껍데기다. 멀쩡한 갑옷에 기름칠할 생각은 않고 다 갈아엎고 새로 만들자고 한다. 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가? 그 와중에 들리느니 백성들 배 앓는 소리뿐이다.//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