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
어디로 흘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네
모든 바람이 저 숲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믿을 건 아무것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네.
바닥에 맨발로
서 있던 날도 많았지
독수리가 허공을
빙빙 도는 빈들에서
내 마음 움푹 패도록
그대를 생각하네. /임성규
낙수에 하염없이 취하던 때가 있었다.아무것도 못 하는 무기력에 나른히 빠진 채 비나 바라보던 시절, 시골집의 낙수는 지음(知音) 같았다. 초가든 기와든 지붕을 아는 낙수는 비의 굵기에 따라 리듬을 달리 한다. 그 중에도 처마 끝을 한참씩 잡고 있다 마침내 떨어지는 투신들! 투명한 망울 속에는 더 아슬하니 영롱한 풍경이 맺히다 지곤 했다. 우두커니 마루에서 낙수로 먼 편지를 적기도 했다.
'어디로 흘러야 할지'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지는 즈음이다. '모든 바람이' 가라는 숲도 믿을 수가 없다니 장마 같은 막막함에 갇혔던가. 닿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인지 '독수리가 허공을/ 빙빙 도는 빈들에서'도 발을 떼지 못 하니 속울음도 꽤나 우묵하겠다. 그렇게 '움푹 패도록/ 그대를 생각'한 게 언제인지, 낙수 잘 듣는 옛 처마 밑에 들고 싶은 때다. 그저 하염없이 낙수나 봐도 좋으려니.
//정수자 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