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풍경
둥그렇게 어둠을 밀어올린 가로등 불빛이 십원일 때
차오르기 시작하는 달이 손잡이 떨어진 숟가락일 때
엠보싱 화장지가 없다고 등 돌리고 손님이 욕할 때
동전을 바꾸기 위해 껌 사는 사람을 볼 때
전화하다 잘못 뱉은 침이 가게 유리창을 타고
유성처럼 흘러내릴 때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와
냉장고 문을 열고 열반에 들 때
가게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진열대와 엄마의 경제가 흔들릴 때
가게 평상에서 사내들이 술 마시며 떠들 때
그러다 목소리가 소주 두병일 때
물건을 찾다 엉덩이와 입을 삐죽거리며 나가는 아가씨가
술 취한 사내들을 보고 공짜로 겁먹을 때
이놈의 가게 팔아버리라고 내가 소릴 지를 때
아무 말 없이 엄마가 내 뒤통수를 후려칠 때
이런 때, 나와 엄마는 꼭 밥 먹고 있었다 /안주철
동네 구멍가게 단골들이 펼치는 천태만상의 풍경은 그야말로 인생 만화경인 셈. 매일매일 이 가게의 천태만상을 지켜보아오던 화자가 볼멘소리를 한마디 한다. 그러자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뒤통수를 후려친다. 엄마는 사람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게다. 살다 보면 쓸데없이 참견하고 간섭하고 염치없이 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못난 사람과도 어울려 한 식구처럼 사는 것이 삶이라고. 엄마에게 구멍가게의 일은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게 아닌 것이다.//문태준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