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무제(武帝) 때 서역에서 길광(吉光)의 털로 짠 갖옷을 바쳤다. 갖옷은 물에 여러 날 담가도 가라앉지 않았고, 불에 넣어도 타지 않는 신통한 물건이었다. 이 옷만 입으면 어떤 깊은 물도 문제없이 건너고, 불 속이라도 끄떡없이 견딜 수 있었다. 길광이 대체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길광은 신수(神獸), 또는 신마(神馬)의 이름으로 나온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는 "길광의 갖옷은 황색인데, 신마의 종류"라 했다. 진(晋)나라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도 "길광이란 짐승은 3000년을 산다"고 썼다.
글에서는 반드시 길광편우(吉光片羽)로만 쓴다.편우는 한 조각이다. 길광의 가죽으로 짠 갖옷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을 말한다. 길광편우는 전체가 다 남아있지 않고 아주 일부분만 남은 진귀한 물건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이다. 길광이란 짐승은 아무도 실물을 본 사람이 없다. 자투리 한 조각을 손에 들고, 이게 바로 그 갖옷의 일부분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본들, 갖옷의 효능은 상실한 지 오래다. 길광은 늘 한 조각으로만 남아있다. 막상 실물이 나온다 한들 별것 아니기 쉽다.
한편 이규경(李圭景)은 그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길광을 아름다운 깃털을 지닌 새의 일종으로 보았다. 이와 비슷한 새에 숙상(鷫鹴)이란 것이 있다. 이 새도 봉황 같은 깃털을 지닌 데다 빛깔이 참으로 아름다워 이것으로 갖옷을 만든다고 했다. 또 금계(錦鷄)는 애계(崖鷄)라고도 하는데, 제 깃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온종일 물에 비춰 보다가 눈이 어찔해져서 빠져 죽기까지 한다는 새다. 자기도취가 몹시 심하다. 이 또한 글 속에 몇 줄 등장할 뿐 직접 본 사람은 없다.
길광은 신수(神獸)인가, 신조(神鳥)인가? 어차피 실체는 없다. 새든 말이든 따질 일이 못 된다. 사람들은 뭔가 굉장할 것 같은 한 조각만 달랑 들고, 있지도 않은 전체 상에 대한 환상을 키워나간다. 그것만 있으면 물도 불도 아무 겁날 것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길광은 편우(片羽)일 때만 길광이다. 어딘가 신비한 곳에 숨어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절대로 모습을 나타내는 법은 없다. 길광은 혹시 희망이란 짐승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