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맑다
'우리 딸 시집가는 날' 달력에 크게 쓰고
아침이 참 맑다며 이불을 널다가
노을을 흠뻑 쏟아놓고
깔깔 웃는 엄마야
흘러간 어느 날의 구름 위를 거니는지
꽃이불 머리에 쓰고 사뿐히 앉았다가
춘화를 그린 밤처럼
붉어지는 엄마야
가볼 수 없는 그곳은 명징한 슬픔이라
엄마는 희미해지고 나는 자꾸 늙는데
세상이 아닌 길을 더듬는
눈물 고운 엄마야 /서성자
이름 붙인 날 많은 오월은 챙길 일도 참 많다. 게다가 청첩은 또 얼마나 잦은가. 그런 중에도 어버이날을 지나며 혼자 운 사람이 많은 듯하다. 특히 어머니가 먼 세상으로 가신 뒤의 어버이날 저녁이면 먼 별이 새삼 가슴을 후빈다. '가볼 수 없는 그곳'이야말로 회한 속에 오래도록 그릴 '명징한 슬픔'이거니…
그래도 '우리 딸 시집가는 날'이라고 써놓은 기억은 언제까지나 참 맑으리. '꽃이불 머리에 쓰고' 있다가 '붉어지는 엄마'도 그렇게 딸을 보내고 그 딸이 다시 딸을 시집보내며 이어지는 어머니의 역사가 있어 오늘 이 세상은 신록으로 다시 눈부시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는 눈물이 넘쳐도 좋으리. 그때마다 혼자 불러보는, 엄마야….//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