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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고무신
이른 봄 깊은 산사(山寺) 적막한 목탁소리.
산새 홀로 드나드는 반나마 열린 법당(法堂).
눈빛이 파아란 비구니 하나 꿇어앉아 울고 있다.
댓돌 위엔 텅 빈 흰 고무신이 한 켤렌데
어디선가 꽃잎들이 호르르르 날아와서
그중에 홍매화 한 잎이 나비처럼 앉는다. /오세영
하버드대학에서 한국시 강의할 때 학생들이 시조에 더 쏠렸던 경험 후 시조를 같이 쓰는 시인의 신작이다. 시보다 시조에서 압축미가 도드라지는 것은 당연한 차이. 이 시조도 '흰 고무신' 한 켤레에 응집한 '깊은 산사'의 봄을 정갈하게 보여준다. '산새 홀로 드나드는' 법당(法堂)에 '꿇어앉아' 우는 '눈빛이 파아란 비구니',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절 마당 너머로 파르라니 번진다. 꽃들도 마음이 쓰였던가. '흰 고무신' 주위로 '호르르르 날아'와 기울인다. 그때 '나비처럼 앉는' '홍매화 한 잎'! '흰' 고무신에 '홍'매화의 대비가 고적한 절에 한 점 선연한 붉음을 얹는다. 게다가 비구니도, 산새도, 고무신도 홍매화도 다 '하나'라니 정경이 더 아스라하다. 호곡(號哭)으로 세워온 이 나라의 봄날, 절집에서도 우는 여인이 있어 꽃조차 아프다. //정수자:시조시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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