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허진 교수의 전시회를 보러 성곡미술관에 갔다가 화가가 쓴 글을 보았다. "해현갱장(解弦更張)!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다시 팽팽하게 바꾸어 맨다는 뜻. 어려울 때일수록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기본으로 돌아가 원칙에 충실하자는 다짐을 해 본다. 편안함은 예술가들이 빠져들기 쉬운 치명적 독이자 유혹이다." 관성과 타성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초심의 긴장을 유지하겠다는 다짐이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 때가 위기다. 이젠 괜찮겠지 싶으면 바꾸라는 신호다. 기성에 안주하면 예술은 없다. 자족은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그 반대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이다. 줄이 잘 맞았을 때 기러기 발을 아예 아교로 붙여놓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 보겠다는 심산이다. 초짜들은 줄 맞추기가 영 어렵다. 맞은 상태가 내처 유지되면 좋겠는데, 거문고 줄은 날씨나 습도의 영향에 민감하다. 제멋대로 늘어났다 수축되었다 한다. 하지만 기러기 발을 아교로 딱 붙여놓으면 그때그때 제대로 된 음을 맞출 수가 없다. 변화에 대처할 수가 없다.
줄이 낡아 오래되면 아예 줄을 죄 풀어서 새 줄로 다시 매야 옳다. 늘어지던 소리가 차지게 되고 흐트러진 음이 제자리를 찾는다. 이것이 해현갱장이다.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나온다. 한나라는 진나라를 이었다. 하지만 진나라의 제도와 마인드로는 나라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옛 제도로 새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것은 끓는 물로 뜨거운 물을 식히고 섶을 안고 불을 끄겠다는 격이라고 했다. 거문고 줄이 영 안 맞으면 줄을 풀어 다시 매는 것이 옳다. 정치가 난맥상을 보이면 방법을 바꿔 다시 펼쳐야만 질서가 바로잡힌다. 줄을 바꿔야 할 때 안 바꾸면 훌륭한 악공도 연주를 못 한다. 고쳐야 하는데 안 고치면 아무리 어진 임금도 다스릴 수가 없다.
해현갱장해야 할 때 교주고슬을 고집하면 거문고를 버린다. 고집을 부려 밀어붙이는 것만 능사가 아니다. 제 악기가 내는 불협화음은 못 듣고, 듣는 이의 귀만 탓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전에 괜찮았으니 앞으로도 문제없을 거야 하며 아교만 찾는다. 남들은 듣기 괴롭다고 난리인데 제 귀에만 안 들린다. 줄을 풀어 새 줄을 매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