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다 시린 이름
오랜만에
남도 땅을
함박눈이 내리 덮네
네 속도 이쯤 되면
제정신이 아니겠지
영원을 못 지울 이름
확, 풀어 터는 걸 보면
설산을 안고 구르다
놓칠뻔한 이름 하나
아득하고 시린 네 속을
누가 속속 알겠냐만
안으로 쟁여온 아픔이
어찌 나만 하겠느냐
/홍진기
누구에게나 시린 이름이 있다. 가슴속에 바위처럼 얹힌 이름도 더러 있다. 지난해에도 너무 많은 이름을 가슴에 묻고 바다에 묻고 같이 땅을 쳤다. 돌아오지 못하는 꽃다운 이름들을 부르기만 하다 한 해를 넘기고 말았다. 시간이 가면 지치며 망각이 끼어드는 법. 그 망각에 저항하는 최소한의 예의로 그 이름들을 다시 부르기도 한다.
여든의 노(老)시인에게도 여전히 시린 이름이 있나 보다. 그것도 '눈보다 시린 이름'이라니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함박눈이 '오랜만에' 내리덮는 날이면 '남도 땅' 어디쯤에서 '확, 풀어 터는' 그리운 이름과 깊이 만나는가 보다. 그렇게 '아득하고 시린' 속을 풀어내면 좀 시원하기라도 할 텐데….
이런저런 응어리가 너무 많은 시절이다. 함박눈처럼 훌훌 풀리는 게 더 많기를 바라며 찬 하늘에 대고 '눈보다 시린 이름'을 불러본다.
/정수자;시조시인/그림;이철원/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