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개울가 밭두렁에 왜가리 한 마리가 외발로 서 있다
서천(西天)으로 돌아가기 전 달마처럼
잔뜩 웅크린 채
눈이 채 녹지 않은 허연 밭뙈기를 바라보고 있다
잿빛 등에는 해진 짚신 한 짝,
눈이 다 녹으면 그는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이홍섭
왜가리 한 마리가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서 있다. 미동도 없이 한 획처럼. 화살이 과녁의 복판을 뚫고 단단하게 박힌 것처럼. 침묵이라는 과녁의 복판에 왜가리 한 마리가 서 있다.
시인은 그 왜가리를 보면서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 좌선했던 달마를 떠올린다. 선(禪)에 통달했던 달마를 떠올린다. 왜가리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의 끝에는 눈이 녹지 않은, 응달의 땅이 있다(이 '허연 밭뙈기'가 근심과 망념 덩어리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가리 한 마리가 면벽 수행을 하고 있다. 왜가리는 운수납자(雲水衲子)여서 해진 짚신 한 짝 외에는 가진 것이 없다. 두루 돌아다니며 수행을 하는 까닭에 거처를 두지도 않는다. 웬일일까. 저 왜가리의 벽관(壁觀), 저 침묵이 천둥보다 크고 무섭다. 혹독한 겨울의 대공(大空)을 깰 듯하다. /문태준 시인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