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변(號辨)

고사성어 2014. 12. 19. 0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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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변(號辨)

 

화가 최북(崔北)은 오기로 똘똘 뭉친 사내였다. 천한 화공의 신분이었지만 기개가 드높았다. 최북의 몇 가지 호 중에 '거기재(居其齋)'란 이상한 이름이 있다. 내 추정은 이렇다. 양반집 사랑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업수이 여겨 이름을 안 부르고 '이봐 거기!' 하고 불렀다. 그림을 다 그린 최북은 호를 '거기재'로 떡 썼다. 너희가 나를 '거기'라고 부르니, 부르는 대로 낙관해 준다는 뱃심이었다.

 

그는 칠칠(七七)이란 호도 즐겨 썼다. 본명인 '식(埴)'자를 초서로 쓰면 칠(七)자를 두 번 쓴 것 같아서 장난친 것인데, 혹은 최북의 북(北)자를 파자(破字)한 것이라고도 한다. 당나라 때 술법에 능했던 도사 중에도 은칠칠(殷七七)이란 이가 있다. 하지만, '그래 나는 칠칠맞은 놈이다. 어쩔래?' 하는 반항이 한 자락 깔려 있다.

 

신분이 노비였던 천재 시인 이단전(李亶佃·?~1790)은 호가 필한(疋漢)이었다. '필(疋)'자를 파자하면 '하인(下人)'이다. 필한은 '하인놈'이 된다. 삐딱하다. 인헌(因軒)이란 호도 썼다. 큰 사람이 감옥 속에 갇힌 형국이다. 그는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며 늘 패랭이를 쓰고 다녀 이패랭이란 별명으로도 불렸다. 정작 당대 최고 문인이었던 이용휴(李用休)는 그의 시를 격찬했다.

 

장혼자(張混字)까지 만들어 당시 출판계와 문화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장혼(張混· 1759~1828)도 신분이 중인이었다. 그는 이이엄이란 희한한 호를 썼다. '이이(而已)'는 '뿐, 따름'이란 뜻이다. '엄'은 집인데, 보다시피 텅 빈 집이다. 이이엄은 결국 아무것도 없는 허깨비 집이란 말이다. 그의 다른 호인 공공자(空空子)도 같은 뜻을 담았다.

 

기술직 중인으로 천대받았던 정민수(鄭民秀·1767~1828)의 자는 기범(豈凡)이다. '어찌 평범하랴?'란 뜻이다. 죽어도 남과 같이 살지 않겠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 문장이 뛰어났음에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서당 선생으로 생을 마쳤다.

 

이렇듯 문인 화가의 호(號)에는 한 시대의 풍경이 떠오른다. 능력 있는 인재를 출신이나 학벌의 틀에 가둬 숨도 못 쉬게 옥죄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가지다. 얼마나 많은 거기재와 칠칠이와 필한과 이이엄들이 이런 폭력의 그늘에서 울분을 곱씹고 있을까?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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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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