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대만 중앙연구원의 후스(胡適) 기념관을 찾았다. 그곳 기념품점에서 후스의 친필 엽서를 몇 장 구입했다. 그중 한 장은 그 후 내 책장 앞쪽에 줄곧 세워져 있다.
"대담한 가설, 꼼꼼한 구증(大膽的假設, 小心的求證)." 가설(假說)이라 하지 않고 가설(假設)이라 쓴 것이 인상적이다. 학술적 글쓰기의 핵심을 관통했다.
공부는 가설(假設) 즉 허구적 설정에 바탕을 둔 가설(假說)에서 출발한다. 혹 이런 것은 아닐까? 이렇게 볼 수는 없나? 그런데 그 가설이 대담해야 한다. 모험적이다 못해 다소 위험해 보여도 가설은 가설이니까 상식에 안주하면 안 된다. 새로운 가설에서 새로운 관점, 나만의 시선이 나온다. 보던 대로 보고 가던 길로 가서는 늘 보던 풍경뿐이다. 볼 것을 못 보면 못 볼 것만 보고 만다.
그런데 이보다 중요한 것이 소심한 구증이다. 소심하다는 말은 꼼꼼하고 조심스럽다는 뜻이다. 가설은 통 크게 대담해야 하지만 참으로 세밀한 논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내가 본 것을 입증할 길이 없다. 소심한 구증 없는 대담한 가설은 황당한 소리가 되고 만다.
명나라 구곤호(瞿昆湖)가 쓴 '작문요결'을 보니 이런 대목이 있다. "글쓰기의 방법은 다만 소심(小心)과 방담(放膽)이란 두 가지 실마리에 달려 있다. 이때 소심은 꼭 붙들어 놓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만약 아등바등 붙드는 것이라면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활발한 의사를 얻는 데 방해가 된다. 방담은 제멋대로 함부로 구는 것이 아니다. 만약 멋대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라면 절도가 없고 방탕해서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본 것이 광대한 뒤라야 능히 세세한 데로 들어갈 수가 있다. 소심은 방담한 곳을 통해 수습되고 방담은 소심한 곳을 통해 확충된다. 선배의 글은 대충 보면 우주를 포괄한 듯 드넓어도 찬찬히 점검해보면 글자마다 하나도 어김없이 꼭 맞아떨어진다."
시원스러운 생각을 꼼꼼한 논증을 통해 입증하려면 소심방담해야 한다. 꼼꼼함 없이 통만 커도 안 되고 따지기만 할 뿐 큰 시야가 없어도 못 쓴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