戲贈周卿丈(희증주경장) 서울길에서 옛 벗을 만나다 田夫偶爾入長安(전부우이입장안) 촌뜨기가 우연히 장안을 들어오면서 朽索累累縛破鞍(후삭누루박파안) 썩은 새끼줄로 낡은 안장을 칭칭 동여맸지. 僮畏達官忙引避(동외달관망인피) 고관을 겁내 아이 종은 허겁지겁 피하고 馬臨周道苦盤桓(마림주도고반환) 큰길에 들어서자 말은 한사코 뒷걸음치네. 荷衣冷落皆蒙垢(하의냉락개몽구) 꾀죄죄한 옷차림에 먼지를 다 뒤집어썼고 菜色憔枯更厚顔(채색초고갱후안) 풀만 먹어 앙상해진 데다 낯짝까지 두꺼워졌겠지. 靑眼故人多不識(청안고인다불식) 반기던 벗들조차 알아보지 못하고서 相逢枉作校生看(상봉왕작교생간) 똑바로 마주쳐도 교생이라 잘못 보네. 조선 숙종조의 문신 조지겸(趙持謙·1639~1685)이 친구 최후상(崔後尙)에게 지어 주었다. 벼슬에서 쫓겨나 시골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우연히 만난 옛 친구에게 반갑게 인사하려는 순간 친구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했다. 서운함에 머뭇거리는 그에게 친구는 한참만에야 "행색이 너무 초라해 못 알아봤다"고 하면서 술을 대접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장난삼아 시를 써 주고 흔쾌하게 웃고 헤어졌다. 그러나 개운치 않은 기분이 완전히 가시기는 어려운가 보다. 인간사의 씁쓸한 맛을 본 느낌이 호쾌한 웃음기에 배어 있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