疎籬(소리)성근 울타리
夾道松籬一丈矬(협도송리일장좌)
길옆의 소나무 울타리 겨우 한 길 높이인데
風摧密葉雪摧柯(풍최밀엽설최가)
바람이 그 많던 잎 떨구고 눈이 가지를 꺾어놨네.
驅牛傖父尋常見(구우창부심상견)
소를 모는 상놈은 뻔질나게 보이고
騎馬何人睥睨過(기마하인비예과)
말을 타고 웬 놈은 째려보며 지나가네.
白酒呼朋隣火照(백주호붕인화조)
막걸리에 친구 불러 이웃집 불이 빤히 비치고
靑山無礙夕陽多(청산무애석양다)
청산이 가려주지 않아 석양빛이 잘도 드네.
縱然此老疎迂甚(종연차로소우심)
이 늙은이 제 아무리 한없이 게을러도
修葺春來肯任他(수즙춘래긍임타)
봄이 되면 보수해야지 저대로 놔두겠나.
영·정조 시대 시인 신택권(申宅權·1722~1801)은 행인들이 자주 오가는 길가 집에 살았다. 키 작은 소나무로 울타리를 한 집이다. 가을 지나 겨울이 되자 잎도 드물어지고 가지도 꺾여 휑하다. 대청에 앉으면 행인의 모습이 빤히 보이고 이웃집에서 뭘 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보인다. 곤궁한 살림살이가 다 보이는지 째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더 신경이 쓰인다. 생울타리의 멋도 좋지만 프라이버시가 침해를 받는 것은 견딜 수 없다. 봄이 오면 손 좀 보리라 굳게 다짐하는 시인에게 석양빛이 쏟아진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그림;이철원/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