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그냥 두어도 될 걸 또
건드리고 말았다
속삭임도 느껴야 할
한 겹의 상피세포를
미어도 미워하지 않으며
면봉으로 닦는다
달팽이관 어디쯤에
그리움이 사나보다
한 쪽이 불편하면
다른쪽도 따라 불편한
서로가 그리며 살아
사뭇 아픈 관계여
/권혁모
윤구월. 드물게 만나는 구월 윤달이다. '윤사월'은 박목월 시로 전해져 정감 어린 서정적 시어로 남아 있다. 그런데 윤구월이라니, 거듭 굴려보며 보너스같이 온 윤구월에 가을이 조금 더 길어지길 바란다. 언제나 빨리 가버리던 가을이 올해는 윤달만큼 더 남아 만추의 어딘가를 오래 거닐 수 있기를―. 그런 날 가을 숲은 어딜 가든 아직 찬란하지 않으랴!
그런데 귀가 밝으면 먼 가을도 창턱에 담아놓을 수 있겠다. 국화 피는 소리, 기러기 길 뜨는 소리, 대추 볼마저 붉는 소리, 달빛 스치는 소리 등을 옮기려면 귀를 맑게 가꿔야 한다.
‘속삭임도 느껴야 할' 섬세한 '상피세포'를 혹여 건드리면 얼른 닦아 섬길 일이다. '달팽이관 어디쯤에' 산다는 그리움도 들이려면 말이다. 그래도 '서로가 그리며 살아 사뭇 아픈 관계'라면 그리움에 다시 싸여 가을 저녁 먼 등불처럼 홀로 깊어가리. /정수자;시조시인/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