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湖寓園雜詠(남호우원잡영)
한강가에 세 들어 살다
十年纔得一枝安 (십년재득일지안)
십년 만에 이제 겨우 작은 집을 얻고 보니
飮啄隨緣亦自歡 (음탁수연역자환)
마음대로 살게 돼서 그게 절로 기쁘다.
算計家貲書劍重 (산계가자서검중)
집안형편 따져보면 글공부가 중요하고
尋思世路釣船寬 (심사세로조선관)
세상 길을 생각하면 낚싯배가 후련하지.
栽添竹樹標新徑 (재첨죽수표신경)
대나무를 더 심어서 새로 난 길 잘 꾸미고
折減蘆花記小灘 (절감노화기소탄)
갈대꽃을 잘라내서 여울 길을 표시하네.
儘道風光無限好 (진도풍광무한호)
풍광이야 이렇듯 한량없이 좋다마는
故園終是欲忘難 (고원종시욕망난)
고향집은 잊으려도 잊기가 어렵구나.
구한말 시인 이건창(李建昌·1852~1898)이 스무 살 때 지었다. 고향 강화도를 떠나 서울에 와서 공부도 하고 과거도 보고 벼슬도 시작했다. 수재로 소문났으나 십 년째 더부살이 생활을 면치 못했다. 용산 강가에 별장을 빌려 살기로 하고 늦가을 이사를 했다. 주인집 눈치를 보지 않고 살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한강의 풍광은 정말 마음에 든다. 강을 바라보면 공부해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중압감도 가벼워진다. 집 주변과 강으로 난 길을 손보았다. 앞으로 멋진 생활이 펼쳐질 것 같아 기대에 부푼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고향집만은 못하겠지만 말이다. 백 년 전 스무 살 젊은이가 서울 셋집 사는 풍경이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