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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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는
구세사 안에서 예수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에 대한 반대자들이 궁극적으로
어떤 자리에 선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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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유가 이사야서와
시편의 두 가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는 것에서
이러한 의도가 더욱 분명해진답니다.
. 구약의 예언자들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지속적 박해의 역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비유가
궁극적으로 보여 주려는 급박한 진실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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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해지고 현혹됨으로써 예수를 하느님의 계시자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예수의 역사적 행동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진리가 손상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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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공격성을 다른 이들에게 투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계시를 통해서 이런 숨겨진 경향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면, 사람들은 결단에 직면하게 된다.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진실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부터 그 진실을 ‘의도적인 완고함’ 속에서 거부하고 거짓말쟁이와 위선자가 될 것인지를 결단해야 한다.”<라이문트 슈바거 신부의 '희생양은 필요한가?'>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