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日逍遙濁酒甁(시일소요탁주병) 막걸리 병 잡은 채로 서성대는 세월 속에 江皐棲托白茅亭(강고서탁백모정) 강 언덕 초가집에 이 한 몸 붙이고 사네. 石田種麥秋無雨(석전종맥추무우) 자갈밭에 보리를 심었으나 가을까지 비 안 오고 弊笱收魚夜有星(폐구수어야유성) 낡은통발에 물고기잡으려니 밤하늘엔 별이 총총하네 匹士文章多失意(필사문장다실의) 힘없는 선비라서 글은 많이 실의에 젖어있고 野人生理合勞形(야인생리합로형) 야인의 처지로는 육신을 써서 생계를 꾸려야지. 琴絃耿耿要誰聽(금현경경요수청) 간절하게 거문고 탄들 누구에게 들려주랴? 流水冷冷虛翠屛(유수령령허취병) 흐르는 물소리만 푸른 산 속에 허허롭네. 취송(醉松) 이희사(李羲師·1728~ 1811)가 마음속 갈등을 드러냈다. 여기도 저기도 굳게 발붙이지 못한 채 서성대는 인생에 대한 갈등이다. 강 언덕 초가집에 살고는 있으나 방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주 술에 기댄다. 농부라 하자니 농사일은 서툴고, 선비라 하자니 그 노릇도 만만치 않다.드높은 꿈과 하찮은 생계 사이에 서성대며 가을날 이 밤 실의에 젖는다.거문고로 절실한 속내를 펼쳐 위로라도 받고 싶지만 누가 들어줄까?넋두리인 듯 물소리만이 빈산을 가득 채우고 있다./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많은 이가 아쉬운 삶을 살아갑니다.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뉘라서 남의 삶을 저울 질 할 수 있겠습니까. 만, 이들에게도 거친 숨결이 감미로운 향기로, 눈가에 어린 물기가 세상을 굴절시켰던, 한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삶의 진수인 고통이야말로 본연의 내 모습이니 참아 안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