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閒中(한중)한가하다 墻角槐花灑地斑(장각괴화쇄지반) 담 모퉁이 회화나무는 땅바닥 여기저기 꽃을 뿌리고 억세던 구름장이 걷혀 하늘도 모처럼 활짝 갰다.
태평성대 사람인 양 비스듬히 누워 보니 남쪽 하늘 별 사이로 달도 함께 배회한다.
하늘 밖이라 끝없이 동해바다 넘실대니 이 세상 그 어디에 서울이란 데가 있나? 재주 있는 사람 치고바쁘지 않은 이가 있던가? 다행히도 재주 없어 나만 홀로 한가롭다.
18세기 문인 백화자(白華子) 홍신유(洪愼猷·1724~?)가 부산에 내려가 몇 년 동안 머물렀다. 한여름 모처럼 먹구름이 걷혀 날이 시원하게 갰다. 산들바람이 불면 노란 꽃이 후드득 떨어져 대지를 수놓는 회화나무 아래 누워 갠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락없는 태평성대의 한가로운 백성이다.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비좁은 서울을 벗어나니 동해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여기는 하늘 밖, 재주가 없어 여기로 왔고 덕분에 무척이나 한가롭다. 바쁜 세상은 재주 많은 이에게 맡기고 나는 저 넓은 하늘과 바다를 즐기자. 참 다행이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