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도시락 배달
"아저씨 약 다 떨어 졌죠. 왜 말을 안했어요."
"미안해서 아파도 참았는데 …"
저녁 9시 수원역 광장 한 모퉁이,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일일이 국을 퍼주며 박 마리아(43, 북수동 본당)씨는 한 마디씩 건넨다. 웬 사람들이 모였나 싶어 기웃거리던 행인들이 승합차에 붙은 '천주교 무료급식'이라는 현수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간다. 밥과 국, 김치를 담은 플라스틱 용기를 땅바닥에 놓고 쪼그리고 앉아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주린 배를 채운 이들이 빈 그릇을 들고 또 다시 줄을 선다.
"아직 식사 못한 사람 있어요?"
박 마리아씨는 두 번 먹는 사람들 틈에 치여 행여 한 끼조차 못 먹는 이가 없는지 챙긴다. 승합차 뒷문에서 밥과 국, 김치 배식을 끝낸 박씨가 옆문 쪽으로 가자 그 앞에서 기다리던 이들이 다시 주문한다. 가방하나 얻을 수 있느냐, 밤에 쌀쌀한데 긴 남방 있느냐, 비누하나 달라, 양말이나 속옷 있느냐 ….
승합차 안에 칫솔, 치약, 비상약까지 갖고 다니는 박씨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차안에서 꺼내주지만 부족한 것이 많다. 그녀는 이들을 위해 각 본당에서 바자회 때 남은 물건들을 얻어야 한다. 늦게까지 남았던 몇 명이 박씨에게 상담을 한다. 그녀는 수첩에 다 메모를 하며 아픈 사람의 경우 무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약속 시간을 정한다. 그리고 약도 타다 준다. 박씨가 이곳에서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무료급식을 한지도 벌써 6개월째 음식을 실은 승합차를 역 광장에 못 들어가게 해 실랑이질을 벌여 30분씩 늦은 적이 있지만 지난여름 폭우 때나 휴일에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지난 4월 초 한 음식점에서 밥이 많이 남는다고 아이들이 우리 집에 가져 왔어요. 식구가 다 먹고도 남았는데 다음날 또 가져와 궁리 끝에 김밥 20인분을 싸서 도시락에 담아 저녁 9시에 역전으로 갖고 나갔어요."
박씨의 무료급식은 이렇게 시작됐다. 지금은 70-80 명분의 밥을 24인용과 15인용 전기밥솥으로 두 번씩 한다. 하루 15kg 정도 사용하는 쌀은 본당의 성미운동으로 모이고 쌀이 떨어졌다 싶으면 용케 채워진다. 지난여름에는 벌레 먹은 쌀이 들어와 깨끗이 씻어 떡을 해서 수재민에게 전했다. 부엌이 좁아 국은 복도에서 끓인다. 시어머니도 거들고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음식을 담은 용기를 차가 있는 곳까지 나른다. 김치는 몇몇 본당에서 교대로 담가다 준다.
"저는 계산을 안 하고 살아요. 가계부도 없어요. 계산을 하면 욕심이 생길 것 같아서요. 그 대신 꼭 필요한 것만 사기 때문에 부족한 것에 익숙해 있어요."
그녀는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자신이 사는 아파트를 출발, 우선 성당에 들러 성체조배를 한 뒤 역전으로 향한다.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다.
"70명이 넘는 사람에게 내가 직접 밥을 해 먹일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기쁜데요."
영구임대 아파트 통장인 그녀를 동네 사람들은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쯤으로 알고 있다. 성이 다른 7명의 아이들과 두 팔이 없는 장애인 남편, 시어머니와 오순도순 한 가족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든 일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가고 있다. /평화 신문 기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