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눈

시 두레 2014. 1. 14.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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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눈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1925~1980)

 

 

   어두컴컴해지고 호롱불은 켜졌다. 불빛 둘레에 눈발이 뿌린다. 눈발은 벌떼처럼 붐빈다. 눈발은 달리는 말의 발굽처럼 재촉한다. 말 목덜미의 갈기처럼 흩날린다. 또 눈발은 한 단의 짚이나 마른 대궁의 풀을 손작두로 썰 때의 소리를 내며 쌓인다. 그리고 바깥 외진 곳까지도 내려 하얀 단층을 이룬다.

    응축과 생략을 한껏 사용한 단형의 시가 이처럼 여러 겹의 상상을 이끌어낸다는 게 놀랍다. 이 시를 읽고 있으면 눈발은 눈에 가득하고 귀에 가득하다. 채색을 하지 않은 가늘고 정교한 선의 소묘를 보라. 하지만 분주함과 여유, 피로와 평온, 있음과 없음이 동시에 표현되어 있다. 단일한 반복과 병렬을 통해 음악이 생겨나는 풍경은 또 어떠한가. 눈 오는 삼동(三冬)에는 "고산식물(高山植物)처럼 / 늙으신 어머니가 돌리시던 / 오리 오리 / 맷돌 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노래한 박용래의 시 '설야(雪夜)'를 함께 읽자.

   /문태준:시인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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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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