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帖(춘첩)새봄을맞아
靑山不改色(청산불개색)
청산은 푸른빛을 바꾸지 않고
流水不改聲(유수불개성)
유수는 물소리를 바꾸지 않네.
唯願主人翁(유원주인옹)
바라고 바라건대 주인옹이여!
不改幽棲情(불개유서정)
호젓이 사는 마음 바꾸지 말자.
/박세당(朴世堂·1629~1703)
17세기의 문신 서계(西溪) 박세당의 시다. 40세 이후 수락산에 칩거한 이후 지었다. 그는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걸어간 의지의 인물이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런 세상을 위해 일하면서 좋게좋게 지내면 되지 않느냐는 것들에게 결단코 머리를 수그린 채 뒤따르는 짓거리를 하지 않겠다"며 소신 있는 정치적 행보를 했고, 학자적 양심을 지켰다. 남과 적당히 타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전형을 볼 수 있다. 그런 그가 새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첫날 자신의 의지를 밝히는 시를 지어 문에 걸어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서울 정도의 의지가 번득인다. 계절에 따라 성쇠가 있기는 하나 청산도 유수도 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그 유상(有常)한 자연에 비하면 인간이란 얼마나 무상(無常)한가! 그러나 나만은 다르다. 육신은 바뀔지 몰라도 정신은 바뀌지 않는다. 옛 선비의 짧은 시가 청산과 유수의 불변함에 빗대어 강인한 인간의 의지를 서슬 퍼렇게 보여준다.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 /그림:유재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