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의 사람

시 두레 2013. 12. 26.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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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의 사람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점을 친다지 
접시에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아 
눈을 가린 술래에게 하나를 집게 하는데 
반지를 집으면 곧 결혼하게 하고 
기도서를 집으면 수도원에 가게 되고 
물을 집으면 오래 살게 되고 
진흙을 집으면 곧 죽게 되고 
동전을 집으면 엄청난 부자가 된다지 

내가 집어든 것은 진흙, 
차갑고 축축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손끝에 느껴질 때 
그것이 죽음이 만져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조금 놀라기도 하지
 
그러나 우리는 오래 전 진흙으로 빚어진 사람, 
아침마다 세수하면서 그 감촉을 느끼곤 하지 
물로 씻어낼 때마다 조금씩 닳아가는 진흙 마스크를 
잘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루를 시작하지 

아일랜드에 가지 않아도 
반지, 기도서, 물, 진흙, 동전을 담은 접시는 
식탁이나 선반 위에 늘 놓여 있지 

내가 집어든 것은 진흙, 
그것으로 빚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고 
진흙이 마르는 동안 갈라지는 슬픔 또한 기다리고 있으니 
나는 눈 어두운 진흙의 사람, 

그러니 내 손이 
진흙을 집어 들더라도 부디 놀라지 말기를!   
가렸던 눈을 다시 뜬다 해도 
나는 역시 한 줌의 진흙을 집어들 것이니!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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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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