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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扇(제선)부채
幾回擊絶千年事 (기회격절천년사)
천년의 역사를 보면서 몇 번이나 내려쳐서 부쉈던가?
也復橫遮十丈塵 (야부횡차십장진)
열 길로 솟구친 먼지도 가로막으려 자주 펼쳤었지.
知子生平藏玉貌 (지자생평장옥모)
한평생 백옥같은 그대 모습 잘 아나니
路中人少意中人 (노중인소의중인)
길 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대 마음에 드는 이 없네.
/최창대(崔昌大·1669∼1720)
숙종조의 명신인 곤륜(昆侖) 최창대가 부채를 주제로 썼다. 시벗 홍세태(洪世泰)가 오래 사용해온 부채가 닳고 해어져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자 새것으로 바꿔 주고 헌것에 시 두 편을 써서 돌려주었다. 그 첫 번째 작품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여름이고 겨울이고 부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손에서 부채가 떠나면 손과 마음이 허전하였다. 선비의 손에서 부채는 더위를 몰아내는 단순한 도구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역사를 읽다가 분개하면 손에 쥔 부채를 내리쳐 울분을 삭이고, 문밖을 나서면 더러운 세상 꼴을 도저히 볼 수 없어 차라리 내 낯을 가리는 도구였다. 부채는 주인의 마음이었다. 그 부채가 이제 다 망가졌으니 그 주인의 속마음을 너무도 잘 안다. 이 도시 어디에도 마음을 나눌 사람 하나 없는 주인의 고독과 울분을.
/안대회:성균관대 교수·한문학/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