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만일 네가 혼기 꽉 찬
아가씨라면
네 집 담장 위에다
꽃 핀 화분 대신
유리 항아리를 올려놔주렴
행인들 중 몇은
이날을 기다려 찾아온 젊은이.
그중 발 빠른 손이 항아리를
집어 던져 깨뜨릴 테니
깨진 유리 조각을 밟고
혼례의 승낙을 구하려
네 집 대문을 두드릴 테니
/류인서
가을밤은 차고 가을 물소리도 차다. 올려다보면 서걱이는 별의 찬란한 행렬이 이승의 끝이 어디인가 묻고 있다. 수억 광년 저편의 공간을 가로질러 온 빛들. 수억 광년이라니. 그것은 시간의 이름인가? 허무의 이름인가? 아니면 무변(無邊)한 인생의 이름인가?
별은 소리를 내듯, 숨을 쉬듯이 하늘을 빛내는데 우리는 왜 때로 아프게 살아야 하는가 묻는다. 저 찬란한 하늘의 빛들이 때로는 유리 조각의 그것처럼 통증의 무늬로 보이는가. 아프지만 필사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목숨을 내놓고 가야만 하는 길이 있나보다. 가령 '혼례' 같은 것 말이다. 유리 조각을 밟으며 혼례 승낙을 구하러 오는 이 있다니 그것은 세속의 결혼식을 말하는 것은 아니리라. 대우주에서 짐승을 거쳐 인간으로 내려오는, 기쁨과 슬픔이 반분한 사랑의 향연. 비밀문서처럼 숨어 아름다운 시다.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