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 생을 돌아보면서 과거 한때, 한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는 그렇게 하기를 참 잘했다고 여기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그때가 나의 운명을 가르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하여, 잘못 선택된 그때의 자기를 심히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명, 과연 운명이란 외부 작용인가 아니면 자기 의지로 만들어지는 필연인가.
내 몸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 자국이 살아온 내 발자취를 거증(擧證)하는 양 사라지지 않으니 이는 나 자신이요 내 삶의 조각(彫刻)이다. 그 여러 상흔(傷痕)에서 별처럼 보석처럼 새겨진, 이마 한가운데 자국은 이따금 이상한 생각을 하게 하고 생활의 지표 같은 구실도 하고 있다.
이 상처는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는 경고의 표지요 항상 보고 깨달으라는 듯이 가장 잘 보이는 곳, 가장 자주 보는 곳, 그러면서 내 전체와 조화를 생각해야 하는, 그런 위치인 면상(面相), 하고도 이마 위 한가운데 어느 쪽도 기울임 없이 균형 잡아 자리한다.
생각해 본다. 그때 내가 지극히 짧은 순간에 그 자리에 그 자세로 있었던 것, 또 그 넓은 공간에서 이마에 날아오는 병의 어느 면이 반드시 지금에 이 상처 자리에 닿을 수 있는지, 기묘하고도 신통해야 할 그런 상흔(傷痕)이다. 수학적으로 풀어보고도 싶고 물리적으로 따져보고도 싶다. 어떻게 하든 이는 고도의 논리를 요구하는, 확률이 어쩌고저쩌고하는 것으로는 풀리지 않을 것 같다.
화살로 고정된 표적에 고정된 자세로 쏘는, 비교적 의도하는 대로 쏘아서 날아가는 발사기로 쏘는, 꿰뚫는 가늠으로 쏘아도, 한가운데를 맞추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테다.
하물며 삼백육십 도를 돌 수 있고 위아래로 상하좌우로 삼백육십 도를 움직이는 표적인 내 이마의 한가운데를 맞혔다. 그것도 움직이는 자세의 팔로 던져서 맞혔으니, 화살에 해당하는 던져진 병의 길이가 10센티미터도 남짓, 너비도 4~5센티미터가 넘는 병이 지금 내 이마의 한가운데를 맞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묘하다.
신작로 가에 두 집 건너 윗집에 사는 ‘경구’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나와 단짝이다. 쌍둥이 모양으로 붙어 어울리면서, 아주 죽이 맞는 동무였다. 이른 봄에 눈이 녹고 땅 위의 물기가 잦아들어 흙이 신발에 묻지도 않고 먼지도 나지 않는, 촉촉한 땅인데 그 습기를 보존이라도 하고 싶은 듯 잔뜩 흐린 오후였다.
주리 틀리는 우리 둘은 무작정 문밖으로 나섰다. 아랫집 ‘정환’이네 담밖에 쌓아 놓은 진흙더미 위에 바가지 속이 허옇게 널려있다. 장난기가 돋은 나는 뛰어 올라가서 하얀 박속을 뜯어서 언덕 밑으로 던지며 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피하기도 하고 더러는 몸에 맞기도 하는데 경구는 던질 물건인 박속이 없는 위치인 언덕 아래에서 내가 던져 땅에 떨어진 박속을 집어서 내게 던지는 형편이 되었으니 불리한 위치임에도 밑에서 잘 대응했다. 점점 덩어리가 커지고 급기야는 박속 전부를 통째로 들어 던지는, 확전(?)으로 되었다. 하얀 박속 한 개가 경구의 가슴팍에 묵직하게 닿았고 그 박속은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경구가 그 박속을 되 던지기에는 너무 무겁고 컸으며 더구나 위로 던지는데 느리고 힘도 없어 되잡아 던질 수는 없어 보였다. 내가 재차 던지려고 돌아서려는 순간 불이 번쩍했다. 따뜻한 물기가 손바닥에 만져졌다. 손을 보자마자 뇌성(雷聲?)이 폭발했다.
이웃과 어머니가 달려왔지만, ‘경구’는 줄행랑을 쳤고 내 앞에 있는 것은 깨진 병 쪼가리뿐이었다.
순박하신 우리 어머니. 아들의 면상 한복판에서 나는 선혈을, 상처를 보시고 얼마나 놀라셨을까? 긴 한숨과 함께 치마폭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꼭꼭 안아주셨다.
서서히 의원 집 문을 나섰다.
보실 때마다 이마의 흉터를 걱정하시며 측은해하시다가 때로는 나 몰래 눈물도 많이 흘리셨다. 어머니 생각에도 심상치 않은 징후로 점지하시는 듯. 속설에 의했건 느낌에 의했건 간에 보통의 일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이후 내 생활은 이마의 별 같은 상처로 해서 그랬는지, 긴장은 한 치도 풀리지 않았다. 그 후 난 많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됐으나 그때마다 이마의 이 별이 오히려 나를 수호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대가는 인고(忍苦) 그것이다.
증명이라도 하듯이 할머니도 늘그막에 별을 다셨다. 솜을 타시러 읍내로 가셔서 솜틀 기계에 다치셨는데, 그 상처 자리가 나하고 똑같은 자리이니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기막힌 일치점이다.
그 시절에는 계(모毛)실 목도리를 길게 해서 목에 감고 다니던 때였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몸을 쓰시는 분인데 아마도 일직 홀로 되시어 매사를 손수 하셔야 만이 직성이 풀리고 또 그렇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을 것이다.
솜틀 집주인이 다 알아서 해 주련만, 할머니는 주인 몫까지를 할 천사 같은 부인지라, 솜을 들어 솜틀 위에 집어넣는 일을 주인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하셨다. 긴 목도리는 바로 밑의 피대(皮帶)에 감겨서 큰 바퀴를 한 바퀴 도는 사이에 할머니 머리는 당겨지는 목도리에서 벗어날 수 없이 그만 밑으로 끌려 들어갔다. 순간에 이마가 기계의 통에 닿고 말았다.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생명을 잃을 큰 사고였다.
손자와 할머니는 거울 앞에 앉아서 누구의 흉이 더 바르게 예쁘게 새겨졌는지를 겨룰 판이 됐다. 할머니도 나도 같이 평탄한 길을 걸어서 살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 별이 그나마 목숨을 이어준 액땜이라면 위안이 될까?! 한데, 새겨진 조각이 육체에 머물고 있으니, 이다음에 무엇으로 견주어 볼까. 뼈에도 자국이 있다면 이다음에, 먼 훗날, 할머니 앞에 나가서 우선 안기고, 이마의 자국을 견주어 볼까나!!/외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