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1

외통궤적 2008. 6. 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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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010219 구두1

선악과를 따먹고 비로소 부끄러움을 알았고 낙원에서 내 몰리면서 고통과 죽음이 있었다지만 이러는 가운데서도 발을 보호하는 신을 만들어 신으면서부터 정작 인간은 갈등과 고뇌와 질투와 시기의 골이 깊어진 것 같다.

 

신발은 형태를 달리하는 많은 복식과 함께 발전되면서 신분의 상징으로 또는 의지의 표현수단으로 이용됐던 것 같다. 신발이 다른 복식보다 나중에 생겨서 신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들은 유사이래 변화무쌍한 복식의 일부분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복식 중에서도 신발이 갖는 의미는 다른 복식보다 우리인간의 생존과 밀접히 관계되어서, 오히려 숨겨진 것이 들어 나듯 돋아 보인다.

 

지금도 맨발을 고집하는 부족들도 있음을 우리가 알고 있다. 언뜻 보기에 미개하고 어리석어서 그런 것같이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들의 건강과 수명이 우리들 문명을 자처하는 개발국의 인간과 비교해서 다소 떨어진다 해서 그들의 행복지수(?)가 과연 떨어지는지 물어보고 싶다.

 

모름지기 그들의 행복지수가 월등히 높을 것이다. 이는 발바닥이 우리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한한 생명의 샘 줄이 될 것 같기에 부정하고 싶지 않다.

 

이것도 알몸을 가리는 이치와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 살 수 있는 은혜를 저버리는 것 같아서, 오늘을 사는 내가 할 말을 못하고 발밑을 내리 보게 된다.

 

신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것인가. 그렇다면 발바닥에 손톱 같은 것을 덮어 씌워서 걷게 하든지 새의 부리처럼 각질을 만들어서 걷게 했어야 옳다.

 

그러나 그렇지 않음은 발바닥으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아서 신체의 대사 촉진과 순환의 기틀을 다지고 생체의 리듬과 존속을 지탱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인간은 발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감싸서 이런 기능을 막아버렸으니 끝내는 질병을 자초하고 만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속에서도 감싸 신은 신발 속에서나마 미미한 애초의 발의 기능을 아직  유지하며 끊이지 않았기에 생을 이어간다 할 것이다.

 

지극히 다행한 것은 일정 공간 일정시간이나마 맨발로 발바닥을 자극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한 것이다.

 

나 또한 신발에 얽힌 티끌 같은 일들이 없을 리 없다. 이는 머리를 하늘에 두고 발을 땅에 붙이고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그런가보다.

 

어렸을 때에 짚신을 내 손으로 삼아 신었던 일은 작은 추억의 하나이지만 내 분에 넘치는 가죽구두를 신게 된 사연이 너무나 가슴 저리고, 이 구두를 잃게 되는 사연 또한 기막힌 대목이여서 숨을 깊이 몰아쉰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일이다. 숙식비를 해결할 수 없는 양심 가 한사람이 자기 양심을 송두리째 버릴 수 없어서 숙식비의 지극히 일부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를 양심의 담보물로 내 놓고 갔다. 소련군 장교들이나 신고 다님직한 기다란 가죽장화를 내놓고 몰래 사라져 갔다.

 

그런데 이장화의 용도가 우리 집에선 누구에게도 닿질 않아서 광에 밀쳐놓고 있던 중 우연하게 구두 수선공이 투숙하게 됐다.

 

아버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셨고 끝내는 내 구두를 새로 짓기로 했다.

 

며칠을 두고 지었다. 완성품은 투박하고 묵직했지만 학생이 신기에 알맞게 복숭아 뼈를 감싸도록 신발 목을 길게 뽑아서, 당시에 유행하던 신으로는 별 손색이 없게 뽑아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이런 고급(?)신을 신고 다니는 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이번에는 이 신을 신을까 망설이다 겨우 하루 신고 며칠을 벗어두는, 내 마음 길들이기와 보는 급우들 눈길들이기를 여러 달을 하면서 어색하지 않게 익혀나갔다.

 

<복식의 하향 저변확대>는 이루어 질 수 없었고 내가 과시해야하는 특별한 사유가 없었던 터라 그냥 일인 쇼가 된 꼴이다.

 

학생들의 신발로서는 이미 첨단의 자리에서 멀리 뒤쳐진 일본식잔재의 산물인 ‘아미아게’[()]이기 때문이다. 이 신은 뒷날 내가 사십육 킬로그램의 몸무게로 전선을 향해서 내달으며 또래의 예비병틈을 비집고 들어가던 때까지 내 발바닥을 가리고 있었다.

 

이 신과 나의 인연이 영영 멀어지는 그 날을 맞았다. '안변' 이라는 사과고장, 기차길의 분기점에서 간이 신체건사를 하는 사이에 허름한 운동화와 바꿔 신으면서 웃돈을 받아서 손에 꼭 쥐고, 보고 또 보고 아버지의 얼굴과 벗어준 구두와 신고 있는 헌 운동화를 번갈아 바라보며 한없는 눈물을 흘렸다.

 

푸른 사과나무 사이로 올려 뵈는 하늘을 향해서 이 돈이 앞으로의 내 운명을 가름하는 여비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얀 구름이 사과나무 사이를 건너가며 ‘아버지의 뜻이 담긴 구두가 변하여서 그 돈이 되었으니, 그 구두는 너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졌노라고, 증발하듯이 인솔되어 가는 네 손엔 무일푼이었기에 그렇게라도 노자를 마련해야 했노라’고 응답하며 남쪽으로 흘러갔다.

 

짧은 사연을 적어 불효를 빈 내 엽서 한 장이 아버지의 슬하에 떨어졌는지, 영영 하늘로 날아갔는지, 속 시원히 알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

 

그 구두 속에 원시인의 발이 자극 받아 오늘을 이은 비밀의 요철(凹凸)이라도 있었는지, 아직 나는 이렇게 살아 숨 쉰다. /외통-

 

 

 

나로서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은

자기가 생산해내는 것보다

더 많니 소비하는 사람이다(E.허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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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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