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거리

외통넋두리 2008. 6. 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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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1549.001013 굿거리

처갓집에서, 신랑의 꿈같은 첫날에 이은 사흘 동안은 번개같이 지나고 이제 떠나는 날이 됐다. 고리를 바리바리 시집에 보내느라 처갓집은 말 그대로 잔칫집이다.

 

신랑이 아침을 서두른 탓인지 미간이 좁혀지고 손이 가슴에 얹어진다.

 

신랑의 거동을 빠짐없이 챙겨보든 장모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는지 사위에게 묻는다. ‘자네 무슨 일인가?’ 단 한마디에 ‘속이 거북합니다.’로 이어진 사위의 대답은 그저 아무런 일이 아닌 듯 평범하지만, 잔뜩 준비한 예물이 마당에서 떠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신랑 집에서 준비하는 잔치시간을 생각하여서인지 장모의 눈알은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오르내리며 그 눈빛 또한 예사롭지 않다.

 

아침부터 장모의 행동은 신을 거꾸로 신고 부엌에 드나들며 부지깽이로 애꿎은 강아지만 삿대질하고 있다.

 

오늘의 중압감이 은연중 몸 밖으로 새서 정신없이 움직인다.

 

딸의 꿀단지인 신랑이 배를 움켜쥐니 장모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지 모른다. 장모는 얼른 부엌의 층 걸이 살강의 맨 위층 구석에 놓인 한 되짜리 유리병 속의 맑은 식초를 하얀 사기 종지에 따라서 신랑에게 주며 얼른 마시란다.

 

계면쩍어 고개를 잠시 숙인 사위는 주저하지 않고 장모의 권을 받아드려서 장모의 말이 떨어지자 순식간에 들이켰다.

 

신랑은 비명을 지르며 구르기 시작하고 네 활개를 폈다가 다시 달팽이처럼 사지와 온몸을 말았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이윽고 신랑 집에까지 이 소문이 닿아 신랑 집 동네는 영문을 모르는 소문만 무성했다.

 

장모가 미련하여서 식초병과 양잿물 병을 함께 나란히 두었는데 허겁지겁 하다가 그만 양잿물을 따라 주었느니, 알고도 무슨 사연이 있어서 모르는 체 하고 따라 주었느니, 귀신 씌어서 집안을 그렇게 이끌어갔느니, 갖가지 추측이 돌았고 게다가 사람마다 한 가지씩 보태어 나갔다.

 

신랑은 날이 갈수록 쇠약해서 급기야 푸닥거리로 귀신을 쫓아내는 결정을 내릴 모양인지 어느 날 아침부터 징 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울렸다.

 

구경거리가 별로 없는 시골은 이 굿판이 꽤 좋은 눈요기가 되고 있다. 얘깃거리가 풍성해서 애들은 애들대로 무당의 괴력을 입에 담고, 어른들은 대 잡은 대주와 안주인의 입을 통해서 튀어나오는 그 집 조상들의 숙원이나 맺힌 한을 듣고 수군거린다.

 

굿은 몇 날밤으로 계속되었다. 무대는 마당도 됐다가 봉당도 됐다가 환자의 방으로 옮겨가기도 하면서 집 온 안팎을 돌면서 신명나게 풀어댄다.

 

이렇게 큰 굿판이 이어지며 한 고비를 넘어서면서 동네의 여러 아낙들을 울린 끝에 사그라졌다.

 

몇 달 뒤, 그러니까 혼인 후 일 년 만에 신랑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원근동을 망라, 아낙들의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의 관리상태가 새롭게 바뀌게 되었다. 극약인 양잿물은 특별히 관리하는 일대 혁명을 불러왔다.

 

옛 얘기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 것은, 조심성 있게 다루었다는 그 극약인 양잿물을 바닥 어디에 놓아 보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린이나 집짐승들이 핥거나 마셔서 화를 입을 것 같으니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올려놓은 것이고, 또 아낙들의 미적 감각이 병을 크기순으로 놓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참으로 안타가운 생각이 든다. 그래도 침착하게 다루었다면 식초와 양잿물을 분간 못하지는 안았을 것이다.

 

 

굿판을 왜 벌이는지? 굿판을 구경하러 다닌 나의 당시의 의문은 이제 어렴풋이 풀린다. 일가이긴 하되 왕래가 전혀 없는, 항렬이 같다 뿐인 꽤나 먼 집안의 일이 아직 뇌리에 생생하다.

 

이 경우 신랑은 억울하다. 병 나으려는 생각이 왜 없으랴마는 별로 기댈 때 없는 당시의 시골에서는 절대자에게 의존하려는 마지막 수단이고 그 혼을 달래는 진혼의 굿은 충분하게 그때의 정황을 설명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사돈네 두 집안은 원수지간이 되었을 테고 새댁은 평생을 한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가장 존귀하게 대접을 받아야 마땅할 신랑이 극약을 마신 형국이 된 이 일에서, 인간범사는 사람의 한계를 늘 드러내며 인간의 생각을 늘 초월하는 그 어떤 의미를 읽게 된다. 그것이 크던 작던 가릴 수도 없는 영역을 초월함도 마찬가지리라. 극에서 극을 오간 그 일가신랑의 명복을 빈다. /외통-


 

서둘러 씨를 뿌리는 자는 미숙한 결실을 거둔다.(R.L.스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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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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