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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책상

1616.000902 앉은뱅이책상

 

방은 아홉 자 두 칸을 붙여서 하나로 하고 바닥에는 아무것도 장식하지 않은 통짜 방으로 돼있다.

 

맨 윗목에 대대로 물려온 두꺼운 통나무판자로 선반을 만들어서 가재도구 일체를 얹어놓는 기막힌 설계다. 다른 방 세 칸은 남을 세주고 만다.

 

이 큰방 밑에 할머니가 시집오실 때 가지고 온 두 개의 함과 어머니가 시집오실 때 갖고 온 반다지 두 개가 있다. 그리고 책궤가 세 개뿐인 단출한 방 살림이지만 그 배치는 기막히다. 선반을 다락같이 매어놓고 그 밑에 이런 모든 것들을 벽에 붙여놓고 이부자리와 옷가지는 그 속과 그 위와 언저리를 빈틈이 없이 채워서 입체적으로 배치하였으니 그 외의 방바닥평면 위에는 아무것도 놓을 수 없다. 예외 없이 누나와 내 책꽂이도 작은 선반 형태로 만들어져서 윗목 한 구석에 매 달려있다. 내가 서서 손이 닿을 곳만큼의 높이에 설치 되어있다.

 

철들기전, 누나의 입학을 시기해서 같이 가겠다고 며칠씩 따라 나서는 철부지 내게는 책상이란 아무 소용도 없는, 무의미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입학하고 삼사학년이 되면서 옆집 내 또래와 비교되었고 적이 불편함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어찌하랴. 매달려도 소용없고 울어도 소용없다. 이미 누나는 체념한지 오래인가 보다.

 

내 뜻은 육 학년 때야 이루어 졌다. 그러나 내 기쁨이 어버이의 자식에게 쏟는, 그런 마음을 채워 드렸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살아 계신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다.

 

방은 갈 때로 엮어만든 삿자리로 깔려있고 바닥은 휑하게 트여있다. 두 벽은 여닫이 살문과 벽으로만 차 있고 장식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초벽위의 흙벽마감에서 흙냄새를 흠뻑 내뿜는 새 집이다.

 

어린것들을 키워야하는데, 설쳐대는 어린것들에 매달릴 시간은 없고, 그러니 어린 자식들의 손이 닿지 않을 곳에 모든 것을 놓아두어야 함은 물론이다.

 

낮에는 벼 말리는 건조실로 쓰이고, 때론 터울을 이어 태어날 동생들의 산실이 되고, 봄가을로 이은 길 삼 때 얼레를 설치해서 실타래를 얹고 풀어야하고, 겨울에는 ‘씨앗 틀’을 설치하고 연이어 물레를 설치해서 무명실을 뽑아야하고, 새끼와 가마니를 짜야하고, 집신을 삼아야한다. 방은 다목적 다기능의 생활공간이자 가내 수공업 공장이다.


 

이제야 얘기할 수 있는 떳떳한 집안사정이다. 다른 집보다 모든 일을 곱으로 해야만 불어나는 식구와 그들 장래에 대한 걱정을 덜고, 모든 조건을 백분 활용해야만 어른들의 절박함을 해결 할 수 있었을 게다.

 

이 뜻이 곳곳에 배어 있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때에 친구들에게 기죽어 말 못한 우리 집 살림을 이제야 자랑스레 여긴다. 어릴 때의 아픔을 보상받는다. 후련하고 자랑스레 생각하며 눈앞에 안 계신 부모님을 우러른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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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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