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외통넋두리 2008. 6. 24.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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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1625.001212 도시락

 

고향을 떠나서 이제 까지 숱한 곳을 전전하면서도, 어렸을 적에 맛보았든 그 진귀한 ‘말벵이(마름)’는 맛보지 못했다.

 

이것은 열매인지 뿌리인지 알 수 없고 단지 늪이거나 호수이거나, 그런 물속에서 자란다는 것만 알고 있다. '두백' 이라는 곳, 기차로 한정거장 남쪽으로 내려가 있는 곳에서 다니는 반 친구에게 얻어들은 이야기다.

 

모양새를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작은 밤송이 속 세 쪽 밤톨 중 가운데 밤톨만한 크기의 납작한 몸통에다 양 날개를 단 듯이 뾰족하다. 통통하게 살젔지만 양 날개 끝은 날카로운 송곳같이 뾰족하다.

 

매만지기에 조금은 조심해야하는, 놈의 자기 보호를 위한 무장 같이 보인다. 그대로 놓고 보면 아래 배가 둥글게 된 모양은 마치 독수리의 날개를 펴서 뒤집어 놓은 것 같지만 그 크기가 아주 작아서 작은 밤톨만할 뿐이다.

 

색은, 날것을 보지 못했으니 모르고 삶거나 찐 것은 찐강낭콩 껍데기처럼 연녹색인데 겉과 속이 거의 같은 색이다.

 

삶은 '말벵이'의 굳기는 우리들이 맛보는 갓 삶은 밤에다가 칼을 대어 누르면 그대로 잘려 들어가듯이 연한 편이다.

 

이것도 오래되어서 굳으면 꽤나 딱딱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그까짓 외양이 어떻게 생겼건 무슨 상관인가, 맛이 문제지. 그런데 이 '말뱅이'의 맛이 마치 알 밤중에서도 속이 푸르고 물기가 있는 밤 맛과 같고, 색깔과 연하기가 또한 밤을 닮았다.

 

 

시골학교의 우리 반 친구들은 이 ‘말뱅이’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 정도가 아니라 열광한다. 그것은 '두백' 이라는 곳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품이기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들어오건 말건 그 ‘말뱅이’의 분배, 쟁탈이 끝나야만 비로써 조용해지고 수업이 시작된다.

 

이 친구는 자기 도시락에 이 ‘말뱅이’만 가득 채워 오고 정작 도시락은 없다. 싸올 도시락도 없고 책보자기도 모자라니 하는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의 십시일반이 실행된다. 그는 빈 도시락을 들고 사이사이를 누비며 맛있는 반찬과 맛있는 쌀밥만을 가려서 얻어, 아니 빼앗아 가는 특권은 이 ‘말뱅이’가 철이 지나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된다.

 

지금도 어디에 이 ‘말뱅이’가 있다면 금액의 과다를 불문하고, 거리의 원근을 불문하고, 만사를 제치고 달려가고 싶은 우리 고향의 보배로운 산물이다.

 

기차를 타고 이 ‘말뱅이’가 난다는 늪을 지나간 적이 있다. 눈을 감고 달려가 본다.어릴 적 반 친구아버지의 심경이 읽힌다. 

 

백정 봉 바위 끝에 흰 구름 머물더니

'솔섬'의 푸른 파도 흰 거품 품어내네.

어느세월 이어모아 머문구름 보내나.

 

 

바위 비친 늪 위에 구름 잡은 물 풀잎

조각배 삿대물결 구름 잠을 깨워주네.

일렁이는 물위에 수심 실어 보내다오,

 

봉우리에 물어, '솔섬'에 물은 도시락 

꽂아놓은 삿대 곁에 아들 얼굴 보이니

숨은 얼굴 들어내어 '말뱅이'로 변해라.

 

 

구름은 조각배와 함께 떠나갔다. /외통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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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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