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외통궤적 2008. 8. 1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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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5.020119 선거

무던히도 참고, 더러는 ‘같잖은 사람과’ 충돌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일 년이란 세월, 나로선 십 년이 족히 됨직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선거의 그 날이 다가왔다.

 

 

이날까지 여러 사람들과 친숙해진 것은, 선거를 위해 보다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입후보자의 사무실과 겸하게 된 양조장에 내가 있게 되고 여기에 선거바람을 타고 드나드는 각층 사람들의 낯을 자연스레 익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발전에 뜻을 둔 이루 헬 수 없는 많은 분과 청장년, 십 육 개면에서 모여드는 지역의 당 간부들과 만나는 일이 자주 있게 되었다.

 

이들 중 내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입에선 ‘저 청년은 틀림없이 가까운 친척이라서 취직을 할 것’이라거나 속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이 이미 취직된 것이니 부럽다’거나 하는, 갈라진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길 때, 나는 또 쓸쓸해진다. 현실적 내 입장을 모르고 내 감정과 너무나 동떨어진 생각인 것 같아서 야속하다. 어쩌면 그들은 그들의 장사 속만 생각하고 나 같은 조무래기의 존재자체를 의식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흘러가는 풍토가 당연 한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나를 적극 후원할 사람은 당사자인 의원후보자가 아니라 그를 두르고 있는 무수한 힘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의 개진(開陳)없는 발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의 어느 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양조장에서 저녁마감을 하고 있는데 입후보자 어른의 처남 되는 분하고 그와 동년배거나 손아래일 것 같은 면식이 있는, 전 읍장의 아들이 선거운동을 한답시고 어울려 다니다가 술도가에 들어오면서 ‘서군 여기 서울신문 경 국장 왔었어?’ 듣는 순간 피가 용솟음치며 분노가 치밀어서 그대로는 있을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모멸감과 분노가 순간으로 폭발했다.

 

이사이에 ‘이종덕’은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나는 ‘오’를 보고 ‘좀 나갑시다.’며 소매를 잡아끌었다. 꼬마 ‘육곤’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는 영문을 모르고 딸아 나왔다.

나는 거칠게 단호히 말했다.  “당신이 무슨 연유로 나를 ‘서군’이라고 부르오!  말해보시오!  내가 당신 눈엔 당신 심부름꾼으로 보이오!”  그의 대답 여하에 따라서 일격을 가할 작정으로 발을 벌리고 허리를 굽히고 주먹을 쥐었다.

 

역시 ‘오’는 그답게 눈치가 빨랐다. 그는 나의 각오된 행동에 민감히 반응하고 정확히 판단했다. 그리고 ‘아! 잘못됐습니다.’ 나는 억눌렸든 용수철을 퉁겼고 ‘오’는 부풀렸든 풍선에 바늘구멍을 맞았다. 그리고 바람이 빠졌다. 눈치 빠른 ‘이종덕’은 따라 나와 ‘오’의 사이를 가로막으며 재빨리 ‘오’를 분리시키고 ‘그만! 그만!’ 하면서도 내 태도에 적이 당황했는지 ‘오’를 싸고 길을 따라 내려갔다.

 

 

‘술도가 사장’ 어른이 나를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어른의 처남이 나를 보고 부르고, 또 그 친구도 나를 그렇게 부르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호칭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런 저항의식은 그들은 나보다 앞서서 취직의 빛을 보려니 하는 피해의식도 내게 잠재했으려니와  나를 돌보는 사장, 어른으로부터 듣는 감각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듣는 느낌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어른에게 듣는 ‘서군’ 소리는 그대로 사랑의 소리로 들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이 호칭'서군'은 나를 경멸하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에 화산이 폭발하듯이 울분이 분출했다. 그 사정(射程)권내에 ‘오’가 들어왔을 뿐이다. 이로써 내 인상이 본의 아니게 드세게 비쳤고 이 사실을 ‘이종덕’은 자기의 공과를 자랑삼아서 일러바쳤다.

 

자연 나는 ‘대 센’ 사람으로 치부되고 만만치 않은 청년으로 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이후 ‘오’의 거만한 태도는 없어졌고 지방의 젊은 사람들도 정중히 대해주었다. 이때까지는, 아마도 내가 누구에게나 허리를 굽히고 정중히 대하는 것을 보고 나를 비굴하다고 여기며 얕보았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판결나는 오늘이 있기까지 나는 무척 괴로웠다.

 

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상당한 보수를 정하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확실한 선을 그어 약속한 것도 아니니 나는 초조할 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적극 밀어주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어정쩡한 나날을 지났기 때문이다.

 

 

부지깽이도 꿈틀거린다는 농번기가 지나고, 선거일이 오기까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내 해냈다. 회의 날을 정해주면 회람을 만들어서 대상자의 집집을 자전거를 타고 방문하여 알려주고 확인 받고, 표어도 기안하고, 선거관리 위원회에 법적 해석을 구하고, 백방으로 뛰었다.

 

이것은 잔심부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들여야 하는 궂은일이고 또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이므로 아무도 나서지 않기에 내가 팔 걷어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는 돈 보따리를 들고 지역과 단체와 연고를 찾을 때에 내가 하는 일은 그들에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추장스런 일일뿐이었다.

 

 

집권당의 공천을 따기 위해서 경찰서 정보과 직원과도 접촉하고 그들이 작성해야하는 정보보고서를 초안하는 모임에 불려가기도 했지만 나는 언제나 입회인이고 정보원이고 상황파악에 그치는 변방의 들러리였다. 바로 내가 할 몫인 것이다. 어쩌면 내가 그들에게는 감시자로 비쳤을 것이고 더러는 그들 위에 보이지 않는 기류의 기압(氣壓)덩어리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곡절을 거듭한 끝에 민주당후보 입후보자를 압도하여 득표함으로써 즉각 경찰관 둘이 따라붙는, 의원의 당선현실을 확인하는 순간 아무 보탬을 주지 못한 나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격을 맛보았다. 환희 그것이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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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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