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유혹

외통궤적 2008. 8. 25.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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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원이 억압받았던 한을 민주의 이름으로 날뛰며 풀어서 천하를 주무로고 있다. 거리엔 ‘자유’의 이름을 붙인 모든 간판이 사라지고 어느새 ‘민주’로 치장한 갖가지 간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필경 도시에서는 ‘자유당’이냐 ‘민주당’이냐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기에 앞서 여와 야로 적대하여 질시하는 꾼들의 놀음으로 바뀌었을 터다. 꾼들은 서민들의 수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적어서 그들이 활동하는데 별 어려움은 없을 것이지만  빤한 지역에서는 얼굴을 들고 활보하기가 멋쩍고, 조소와 질시에 뒤 꼭지가 가렵다.

 

 

군내의 ‘자유당’ 각급 간부들은 모두가 바깥출입을 삼가고 사람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할 수 가없다. 그럴 이유를 딱히 찾을 수 있겠는가고 할지 모르지만 성품 탓이다.  내가 이를 극복하는 데는 또 다른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스스로 행동하기로 하니 무리 없이 이끌린다. 그 기준이란, 현실수용의 적극적 자세다. 해서 나는 시치미를 떼고 활보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다.

 

우선은 실낱같은 취업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로 나가서 막노동판에 뛰어들자니 체력이 달리고, 무릅쓰고 굳이 그렇게 노동을 한다 해도 결국은 소질과 걸맞지 않는 장사 길로 나가야 되겠기에 이런 생각은 다음으로 미루고, 있는 이 자리를 수습해야하는데, 의원은 아직 서울에서 새로운 선거가 있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으려는지, 소식이 없다.

 

현상 그대로 이끌어 가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경황에 ‘에이꼬’에게도 확실한 미래를 약속할 수가 없다. 나는 앞으로 또 떠돌아다닐 것이니 나에게서 ‘에이꼬’는 사라지고 환상으로나 남게 될 것이라는 데서, 더욱 괴로운 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가 없다. 이제 마무리만 지으면 떠날 참이다. 그 마무리는 또 언제 될지 언제 의원이 내려올지 모르는 터다. 나는 신의를 지킨답시고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

 

 

‘에이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내 앞날에 있을 수 있는 역경과 순항의 가지가지, 내가 자각하는 내 장단점, ‘에이꼬’가 기회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 추호도 남의 이목을 염려하거나 동정심으로 결정하거나 감정에 치우치거나 해선 장래에 후회할 씨를 갖게 된다는 점, 이런 점을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하여 장래에 후회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 등을 자세하게 이르는 장문의 편지다.

 

모름지기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이다. 마땅하다. 이점은 나도 그러니까! 그는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한 달 가량 아무소식이 없는 동안 나는 단지 모든 일이 추억 속에서라도 점점 잊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체념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이즈음은 누구한테서도 처자중매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인심을 내 눈으로 보고 있다. 언제나 제자리에 서있는 나에게조차 전락(轉落)의 쓰라림과 밀려오는 외로움이 가득한데, 하물며 당사자는 물론이려니와 적극적으로 나서서 운동한사람들은 어떻겠는가를 생각하면 단지 먹고사는 데만 일관하는 데서 벗어난 어떤 활동도 결국엔 그 선에서 이탈한 거리만큼 돌아오는 고통이 따른다는 평범한 교훈을 하나 더 얻는다.

 

일장춘몽이다. 꼬마매파(?)의 짧은 소식이 전해왔고,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늘 만나는 그 장소에서 겨우 우리의 재회가 이루어졌다. ‘에이꼬’는 서먹해하며 말문을 열지 못했다. 언제나 같이, 되는 말이나 안 되는 말을 종잡을 수없이 내가 지껄임으로써 ‘에이꼬’는 말문을 열기 시작하며 하얀 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오늘은 그 시간이 길었을 뿐이다. 유난히 큰 대문 이를 드러내고 황소 눈처럼 큰 눈을 올려 뜨면 ‘에이꼬’의 기분은 최상의 상태이다. ‘에이꼬’가 말했다. 자기의 외사촌 오빠에게 자기입장을 말하고 의논했었는데 그 오빠에게 책망을 들었단다. 그동안에 많은 것을 생각했는데, 갈피를 잡을 수 없어서 이렇게 되었다며 방긋 웃는다. 그러나 나는 많은 부담을 안고 걸어가고 있다. 도시 어떻게 진척이 될지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무언가 확실한 계획을 이야기해야 할 판이니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는 내가 딱하기 그지없다.

 

머지않아서 나는 이곳의 생활을 정리하고 떠나야하는데, 그전까지 어떤 대책이 마련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할 수 없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한다는 각오를 전달할 뿔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두 사람의 앞날을 막연하게 엮을 수는 없다. 그래서 몸부림치고 백방으로 궁리하고 있다.

 

 

어느 날, 의원의 여동생 집을 찾았다. 그 집에는 내 또래의 외동아들이 있어서 이따금씩 만나는 사이였는데 그 친구는 내 입장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용기를 얻어서, 의원이나 그 집의 의견을 간접이나마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어둑어둑할 때 의원동네의 윗마을에 사는 의원의 여동생 집을 찾아갔다. 쪽마루에 앉아서 내 입장을 설명했다. 앞으로 내가 떠날 수 있어도 사귄 ‘에이꼬’ 때문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흥분해서 말문을 잇지 못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집을 떠났음에도 일신의 고통으로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그런데 사랑에 포로가 된 나는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후련하게 내려왔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과연 사랑의 힘으로 이 골짝에서나마 내 긴 앞날의 새로운 디딤돌을 마련하려는지 아니면 미련과 아쉬움 없이 훌훌 털고, 이 고장을 떠나서 부랑아의 티를 내며 전전할지 나도 모르겠다. 자격지심이겠지만,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눈여기는 것 같고 측은히 생각하는 것 같아서 이것 또한 참기 어렵다.

 

이 고비도 내 앞길에 놓인 레일이니 나는 그 위를 굴러갈 뿐인데 무슨 상관이랴 싶다. 하늘을 올려본다. 어둠을 뚫고 논둑길을 찾아 나서는 지난 일들이 떠오르면서, 달빛에 반짝이는 합수의 여울이 밤하늘의 별과 맞닿는 환각에 싸인다.

 

발자국 소리가 불규칙함을 느끼면서 잠시 나를 의식한다. 별은 합수의 지킴이다. 나는 별을 따라서 내려왔다. 내 어려운 일은 언제나 밤하늘의 별과 함께 태동되었고 그 별이 또한 나를 이끌었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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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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