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

외통넋두리 2008. 9. 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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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

5464.020710 삼베​

어릴 때 삼베옷을 무척 싫어했다. 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데다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고놈은 걸을 때마다 호주머니에 가득 넣은 쇠붙이와 함께 자랑이라도 하듯 흔들거려서 내 신경을 야속하게 건드리며 온통 그곳으로 모이게 했다. 적삼도 홑바지도 함께 날개 편 듯 옆으로 펴진 주름이 못마땅했지만, 어머니께 내색할 수 없어서 찡그리며 입곤 했었다. 하지만 또 어머니께서 갈아입힐 때 난 질색하며 입은 옷이 그냥 좋다며 어머니와 줄을 당기다가 또 내가 무너졌다.

어머니의 성화가 아니라면 일단 몸에 걸친 옷은 그걸로 내 것을 만들어 해져서 맨살이 나와도 그냥 입고 싶고 조금씩 일어나는 변화는 변화로 여기질 않아 맨살이 나온들 무심히, 벗으려 들질 않았다. 정들었든지 아니면 게을렀든지 한 번 입은 옷이란 옷은 벗어놓기 싫어하고 새것에 낯설어하는 짓이 오랜 내 버릇이기도 하지만 삼베옷은 유달리 싫어했다. 그것도 새 삼베옷은 옷이 몸에 배어 길들고서야 비로써 풀이 죽어 포근해지며 마음에 드는 옷같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흰 삼베가 시골 사람들의 여름나기에 십상의 입성인 것을 몰랐던 난 물 들인 옷을 입고 대처에서 이사해온 애들을 볼 때 무척 부러워했다. 훤히 속살이 비치고 더럼 타는 흰색이 싫었던 것도 내게 옷을 자주 갈아입히려는 어머니의 극성스러운 면을 피하려는 꾀가 숨어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검은 옷이 더 부러웠는지 모르지만, 그 내색은 할 수 없고, 입고 있는 옷을 그냥 고집해서 입음으로써 분풀이를 하는 심보가 여러 가지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새 옷 싫어하는 이유 외에 더 있었음을 엄마는 모르고 계셨다. 행여 알고 계셨대도 다른 방도가 없으니 모르시는 척, ‘네 배포로 벗고야 다니겠냐?’는 식으로 밀어붙였을 것이다.

삼베는 더 좋을 수 없는 여름 한철 옷감인데도 늘 내켜서 입진 않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별난 성품이었다. 내가 입을 수 있는 옷이 여름엔 삼베옷밖에 없는데도 삼베옷으로 만족하지 않고 엉뚱하게 노출과 살갗 쓰림과 허수아비 같이 옆으로 퍼진 모양새로만 생각이 덕지덕지 쌓였다. 거기에 현실탈피의 용수철 고정쇠가 꼭 틀어박혀서 날 튕겨 나가게 했고, 오늘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입가에 웃음이 터지는 지난날의 옷 실랑이다. 내색할 수 없는 고민, 새 베옷이 날 더 심각하게 했던 것은 보석은 융단으로 싸야 마땅 하련만 지푸라기로 얽었으니 행여 빠진 그것을 누가 주워 가면 어쩌나 하는 나름의 굵고 심각한 고민이 머리에 깊게 새겨지면서 내 성미와 맞아떨어진 것이 그중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크면서 면직물에 물들인 옷감으로 바뀌긴 했어도 내 머리에 박힌 베옷의 감촉과 불안은 지워지질 않는다.



나직이 작은 헛간에 반쯤 덮인 박 넝쿨이 잎을 내려 졸고 있을 때 베틀 소리는 휑하게 뚫린 문지방을 넘어서 울안의 감나무 배나무 앵두나무 잎 사이를 빠지면서 매미 소리와 어울려서 한낮의 여름 햇무리로 다그면 봉당(封堂)의 개 한 마리 늘어져 잠자고, 헤집고 쏘다니다 호박 넝쿨 밑에 숨은 암탉이 운다. 그때 그곳에 웃음이 새고 믿음이 넘치며 평화가 퍼졌었다.

집 떠나서 아직 베틀 소리를 듣지 못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한가한 베틀 소리는 사라지고 잊혔으니 새삼 깨칠 아무런 동기도 없던 차에 오늘 출장 중, 작은 고을 장터에서 쪼그리고 앉은 뉘 댁 할머니 앞에 놓인 삼베 필을 보게 됨으로써 삭막했던 전쟁의 뒤끝에서 정적을 깨는 베틀 소리를 듣게 된다. 잠깐에, 고향마을 어느 집 앞에 있는 착각을 일으키는 삼베 필을 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베틀 소리가 들리고 포근한 고향 냄새가 난다.

삼베 필은 할머니고 아버지고 어머니요 누나다. 장마철에 할머니의 배웅을 받으시며 영 넘어서 삼을 해 오신 아버지, 겨우내 삼 토막 올을 무릎에 대어 앗아 넣은 어머니와 누나, 감고 둘리고 날고 매질해서 베틀에 얹도록 온갖 정성을 다하시는 할머니, 누나의 공깃돌 빼앗아서 깡통에 넣어 베틀에 달아놓고 덜컹거릴 때마다 손뼉 치는 동생, 길쌈은 평화 그 자체다. 그 속에 삶이 있고 애환이 있고 고뇌가 있었다. 그 속에 배움의 빛이 숨어 있었고 시집·장가가는 씨알이 배어있었다.

지금은 먼 옛일.



처가 쪽 한 분이 먼 저쪽에서 삼베 할머니와 흥정을 하고 있다. 시장을 돌며 삼베를 사들였다가 도시에 내다 파는 분이다. 접시에 밤 담은 듯이 올망졸망한 자녀들을 기르시는데 한 다발 베 필은 너무나 왜소해 보인다. 곧 자전거에 싣고 털털거리며 먼 길, 집으로 향하고 있다. 그분은 날 외면하고 눈을 피하셨다. 그분도 길 삼을 할 때가 평화로웠을 것이다. 알알이 맺힌 한이 씨와 올로 엮여 뭉쳐진 삼베 필을 싣고 가는 뒷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

삼베 필이 되기까지 자연산 초목은 일관되게 사람의 손에 다듬어지고 짜였지만, 자전거와 바퀴는 한 시대를 뛰어 굉음으로 가득 찬 쇠붙이의 마찰로 생성되었으니 그 조화는 상극(相剋)된 부조화임에도 이 두 시대를 앗아 넣는 자전거와 실린 삼베 필은 멀어져 가는 나의 길쌈 기억을 또한 앗아 넣으면서 끊일 것 같은 그리움을 잇는다.

삼베 필은 암소가 끄는 달구지에 보일 듯이 말듯이 얹혀 그 위에 걸터앉아 가는, 밀짚모자의 삼베옷이라야 격인데 자전거 뒤에 실은 삼베 필은 어쩐지 비단 같기만 하고 삼베 같지 않으니 아마도 삼베에 벤 길고 긴 사연들이 자전거와 아우르질 못해서 그럴 것이다. 달구지에선 베틀 소리와 다듬이 소리가 들리고 봉숭아와 분꽃과 맨드라미가 보이지만 자전거에선 공장의 매캐한 고무 타는 냄새와 덜커덩 굉음과 찢어지는 마찰음과 달가닥 달가닥 피대(皮帶) 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

노란빛을 내는 삼베를 보니 내 어릴 적 삼베옷 주머니 속 만능(萬能)집게 칼이 그리워진다.. /외통-


9335.220311 / 외통徐商閏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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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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