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통넋두리 2008. 9. 1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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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파(世波)를 헤쳐 가는 나의 인생 항로에도 이따금씩 평온하고 따뜻한 날은 있었다.

 

하늘이 무심치 않아 조상의 수호(守護)염력(念力)이 내게 미쳤으니 돛은 부러지지 않았고 배 또한 침몰되지 않았기에 그나마 이제까지 노(櫓)라도 붙들고 있는 것이 그렇다.

 

거센 파도가 뱃전을 때릴 때마다 나를 내신 절대자의 가호를 믿고 의지했다. 스스로에 힘입어서 병원 문을 드나들지 않고 버텨온 것도 온전히 나를 지키시는 어떤 힘의 존재에 의탁했기 때문이었지만 한 배에 탄 아내가 병마와 싸우면서부터 나도 따라서 병원의 낯선 안내판을 훑기에 이르렀고 이때마다 내 의지가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아내도 나처럼 자신만을 의지하고 조물주께 자신을 일치시키도록 권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설득이나 노력도 모두 내 마음이 ‘돈이 아까운’ 것으로 아내에게 치부(置簿)되니 끝에 가보지 않은 이 마당엔 그냥 지금의 실정에 맞추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는 내 판단이 섰다.

 

실정(實情), 이것이 우리가 취할 방향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나는 고뇌의 늪으로 깊게 빠저들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유리 상자 속의 갓난애 같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애달게 하고 있다. 더군다나 마음을 죄고 기다린 긴 세월 끝에 점지(點指)받은 씨, 신명께 빌어서 얻은 어린것의 앞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멀미만 하고 있으니 난항(難航)의 배를 끌어갈 노(櫓)쟁이 가슴은 더욱 조여만 온다.

나는 이즈음 닥치는 모든 일에서 아내의 치료를 우선하고 있지만 동력을 장착한 큰 배들뿐인 선단에서 내 작은 목선의 위기를 호소한들 그들 또한 생사를 건 그들만의 뱃길이기에 모른 척 할 것이다.

 

바닷길의 조난보다 험난한 삶의 조난(遭難)이다.

 

예상되는 직장상사의 질타를 무릅써야하고, 도담도담 자라는 어린 자식을 돌보아줄 곳을 찾아야하는 것 외에 뿔뿔이 헤어지는 내 겹치기 이산의 괴로움도 모두 풍랑을 헤치는 돛배 위에서 혼자 고민해야 한다.

 

돛대 위에 올라 고장 난 도르래를 고쳐 돛을 내리고 거센 바람을 피해야하는 일, 들어온 물을 퍼내는 일, 모두가 내 몫이고 내 돛배 안에서 허둥대야하는 모든 것 또한 내 탓이다.

 

거친 풍랑은 내 마음을 날카롭게 벼리고 육신의 피곤은 몸의 물기를 응축하여 야물게 근육을 다질 뿐, 언제 멀미하고 토할 틈이나 있는 한가한 사공이던가? 오직 풍파를 헤쳐 나가야 하는 절박할 항해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한순간인들 균형 잡힌 행동을 외면할 수 없기에, 딴에는 평형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건만 아내는 이따금 내 관심권에서 던져진 듯이 몸부림친다.

 

 

대구의 더위가 대륙성기후의 참 맛이라도 보이듯 유달리 기승을 부릴 때도 용케 견딘 아내가 늦여름의 빨간 고추잠자리 무리가 하늘을 덮는 어느 날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팔짱 속에 머리를 박고 움직이지 않는다.

 

가슴이 요동친다. 무언가를 결심해야하는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머리 위에 빨간 잠자리가 내려앉아서 엷은 날개를 내린다.

 

움직이지 않는 아내의 머리카락이 잠자리의 전 바위 각(全方位角) 눈에, 앉기도 날기도 좋은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보였으리라.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예정이라도 해 놓은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내와 꼬마를 데리고 꼬마의 부산 외삼촌에게 들러서 아들 녀석을 맡기고, 선 채로 되돌아 서울로 올라와서 불문곡직으로 병원을 찾았다.

 

어쩌면 병원은 내가 채워줄 수 없는 아내의 불만을,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아내의 허전함과 괴로움을 물리적으로 다스리고 마음의 치료조차 해 줄 것 같았다.

 

 

아내의 입원은 내 도피의 구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감당키 어려운 비용 또한 작은 돛배를 침몰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염 출(捻出) 해야 한다.

 

환자복을 입은 아내는 비로써 자기 위치라도 찾은 듯이, 늘 기쁠 때만 하는 버릇으로 오른손을 펴서 무릎을 내리쓸면서 환한 미소를 보낸다.

마치 친정에라도 와서 자기 방의 따뜻한 아랫목을 손바닥으로 어루만지듯이 쓸어내리는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자기위치 회귀의 만족한 표정이다. 특별한 경우에만 짓는 드문 이 표정과 행동을 보면서 이제 마음이 놓인다.

 

나를 직장으로 되돌려 보내려는 아내의 마음을 죄다 읽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기 때문에 흩어진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얼버무려 감추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면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리고 뒤돌아보았을 때 눈이 벌겋게 충혈(充血)된 아내의 눈을 보고 발길을 되돌렸다.

이번에는 가족을 떠나서 자기 혼자만이 고도(孤島)에 남겨지는 표정으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분명 아내는 울고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면서 내 직장 형편이야 어떻든 다음 주말에 다시 올 것을 내 입으로 약속하고 말았다. 그것은 임시방편이기도 하려니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걸 맞는 태도였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아내의 마음을 다독였다. 못내 얼어붙은 아내의 마음을 녹일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다음 주에 오겠다고 두 번째로 다짐했다. 그제야 아내는 머리를 숙였다. 잠시 나의 입장을 생각했나보다.

아내가 생각하는 내 입장은 실상과 엄청나게 벌어지는 것이란 것을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싶어서 모르는 척 흘러버리고는 손을 다시 꼭 잡고 눈을 감고 생각했다.

과연 다음 주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은 아무 소용이 없는 짓이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혼자 싸안고 걸음을 옮겼다.

 

 

일주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회사 일은 차치(且置)하고 부산에 가있는 꼬마 녀석이 어떤 말썽을 부리지나 않는지 알아보려고 해도 전화도 없으려니와 가 볼 수도 없다.

 

한 주일의 내 배 안의 형편을 회사 일을 핑계로 미루다가 짐짓 아들을 보러 부산으로 갔다. 그것은 아내의 바람이었다.

 

나는 아들을 확인하고 곧바로 서울로 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 건강에 대해서 교감하는 신의 섭리가 있을지라도 시간을 늘릴 재주까지는 주시지 않으셨기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미루고 미루며 보름씩이나 비운 대구의 집에는 들러 보지도 못하니 찜찜한 뒷맛을 남긴 채로 다음 주에 서울의 아내에게 가기로 작정하고 구미의 직장으로 갔다.

 

한 주일동안의 내 머릿속은 온통 삼파래가 얽힌 삼타래 처럼 헝클어져있었다. 그래도 할 일을 빠뜨리지 않고 추슬러 가는 것은 오직 내 갈길, 온전한 방향을 조망(眺望)하는 나의 외곬, 삶의 지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계획된 일에 차질이 없어서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회사의 일이 내 뜻과 같이 밀착되지 않았던 것은 내 집중력의 한계였나 싶어서 되새김하게 한다.

주말이 가까워지면서 일말의 불안이 머릿속 얽힌 타래는 더욱 어수선하다. 아내에 대한 잠재된 가책의 발로였다. 내 감성을 억제하는 이성의 틀 밖으로 서서히 새어나오는 아내의 바람은 곧 자석(磁石)이 되어 천리 밖의 나를 단숨에 이끌어간다.

****

링거주사를 맞고 있던 아내는 나를 보는 순간 반색하며 몸을 일으키려다가 베개에 머리를 던지며 외면했다. 석고를 칠한 듯이 하얗게 굳은 볼만이 보일 뿐이다. 싸늘히 변한 얼굴조차 볼 수가 없다.

 

서서히 다가가면서 아내의 팔에 손을 얹을 때, 반사적 뿌리침이 힘 있게 와 닿는 순간 주위는 피바다가 되어버렸다. 주위의 환자들이 놀라 고함을 치며 간호사를 불렀다. 얼굴과 팔과 손과 옷과 침대와 마룻바닥이 피투성이로 얼룩졌다.

 

링거주사를 수습할 아무런 힘도 생각도 나지 않는, 무아의 경지에서 아내의 행동을 제지 할 수밖에 없다. 아내는 거세게 반발했다.  풍랑을 만난 배 안에서 파도를 향해 절규하던 동승선원이 마침내 조타수를 향해 항거하는 몸부림이었다.

소란스럽던 병실은 고요해졌다. 내 무안은 아내가 당한 병실에서의 외로움과 무연고의 창피를 당한데 비해서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병상생활을 해보지 않은 내가 어찌 아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싶다. 오늘이야, 내일이야, 기다림에 지쳤을 것이다.

 

병상의 이웃에게 이번 주엔 올 거라는 참말도 했으리라.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허세로 비쳐진 패배감에 원망의 폭약을 쌓았고 그것이 오늘 폭발한 것이다.  반가움은 일순에 그치고 지난 보름의 욕된 침대생활이 한없이 원망스러웠으리라. 아내의 처지를 모르는 병상의 이웃들은 적이 의문을 품고 많은 것을 물어왔을 것이고 아내는 그때마다 둘러대느라 곤혹스런 시간을 보내며 나를 원망했으리라.

길고 질긴 우리의 인연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었을 것이고, 기죽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으리라. 아내에겐 이미 가족의 개념이 없고 병마와 싸우는 일념으로 차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먼 길을 함께 가는 한 배 안에서 이는 작은 멀미에 눈감아 이미 육지에 닿은 것처럼 착각하고 배를 모는 조타수의 입장은 멀리, 아득히 잊어버린 것은 아닐지?

아내는 생활인의 위치를 까마득히 잊고 있는 것이다. 풀어 설명할 수 없는 심경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으로 위로의 몸짓만 되풀이 할 뿐이다. 그 어떤 말을 해도 허물어지지 않을 아내가 겪는 외로움의 성벽이다.

 

아내의 병은 예견된 순(順)으로 진행된 듯하다. 우직하리만치 먹고 일하는 것만이 건강을 지키는 첩경(捷徑)일 텐데, 이런 생활태도를 저버린 아내의 먹성이, 내가 보아도 내실(內實)없는 외화(外華)였고 이런 습성은 과감히 남의 말을 받아들이는 아내의 주관 없는 태도에서 비롯된, 아래위의 전면 틀 이의 소산일수 있다.

음식은 입 안 곳곳에서 아울러 맛보게 되거늘 아래위의 모든 부분을 포장한 틀니로서는 아무래도 맛을 알기란 턱없을 것이다. 그래서 늘 맛없는 세 끼가 되었고 불평은 늘 달고 다녔다. 아내는 마침내 빈혈증에 걸리고 말았다.

일 년에 몇 번씩 보혈주사를 맞는 터에 이번엔 그로 인한 병발(倂發)증세까지 드러난 꼴이었다.

 

힘을 모아서 들어오는 물을 퍼내고 서로격려해서 이끌고 엇바꾸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갈 곳, 별을 바라보고 노 저어야하는 우리의 인생항로에서 침몰되지 않으려는 내 노력은 그래서 그칠 수가 없다.

 

배 안의 일은 배 안에서 언제든지 맞잡고 토로(吐露)하고 격려하고 고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잘못이 아무리 커도 훗날 아내가 죄다 이해해주고 나를 대신해서 물 푸고 노(櫓)도 잡고 돛을 달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복도 새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새 링거주사도 꽂았다. 아내는 장기간의 검사와 진단결과에 따라 이제 명쾌한 진료계획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싫건 좋건 그에 따라야 할 것이다.

 

병원에서만이 맡을 수 있는 냄새를 털고 다시 노를 잡으려 작은 돛배에 올라탄다. 노를 불끈 쥐고 힘 있게 젓지만 먹구름에 가려서 별은 아직 보이질 않는다. 여전히 배는 넘실대는 물결에 요동치고 회오리 지는 비바람에 물만 들이친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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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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