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외통인생 2009. 1. 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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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이 ‘신체 발모 수지부모’라며 머리카락 하나라도 소중히 여겼던 시대사조는 망각의 저쪽에 묻히고, 장기를 절제(切除)하며 교체하여 사람을 한낱 부품의 조합 구조물쯤으로 여기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나와는 무관하게 그저 그러려니 하고 지냈었는데, 장모님의 식도암 진단에 뒤따른 수술 여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 이즈음에는 더욱 골똘한 생각에 잠긴다.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 말고는 자기를 존중하여-조상들의 사상을 숭배하지는 않아도-자기 몸을 의미 있게 소중히 하려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운 이즈음이다. 그것은 상당한 부분을 의술에 의존하는 현대 생활방식에도 연유하겠지만 본연의 인간 생명을 도외시하고 치달아 가는 상업성 때문이기도 하다. 하물며 의술에다가 자기의 삶을 의지해 사는 사람들에 있어서야 말할 나위 있을까! 자기 몸을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살게 하는 것으로 오해하리만치 의술에 의존하는 생활양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에 빗대어 나를 생각해 본다. 나 홀로 원시적 생활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내 몸을 받은 그대로, 사는 날까지 가지고 가보고 싶은 절실한 마음에서, 그대로 미적거리면서 의사와 담쌓고 지내는 것이다. 고집스러운 내 성정 탓일 것이어서 그렇겠지만 식구들이나 친지들로부터 비웃음을 사면서 살고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 내 태도다.

나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은 즐겨 수술의 길을 택하고 만족하는데 나로서는 지극히 못마땅하다. 죽고 사는 것은 그 사람의 천부(天賦)적 생존능력에 달린 것이지 외부의 영향으로 인해 좌우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한 이치에서 비롯된 고집이다. 거기에는 그 사람의 삶이 얼마나 충실히, 조물주의 창조 목적에 부합해서, 살았느냐 하는 데로도 견주어질 것이고 달라질 것이니 거기까지 싸잡아서 생각해 보려면 한이 없을 것이어서, 그대로 또 내 기준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과연 현대의술은 사람의 생명을 창조적 차원에서 재생 복원 유지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집도(執刀) 의사들은 신으로부터 생명 창조의 위임을 과연 받았는가? 모를 일이다. 분명한 한 가지가 있다면 수술받는 사람이 온전히 의사를 믿으며 자기를 내맡기고 평안함으로써 자기의 회생(回生) 능력을 최적화한다는 의미에서 긍정할 만하다. 이런 좁은 범위로 울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이점에 관해서 나도 내 말뜻에 내 발이 걸려 움츠리는 대목이 있는데, 어떻게 변명의 여지가 없을지 궁리하다가 가당치 않은 괴변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본질 면에서는 같은 맥락일 수 있다.

빠져 없어진 어금니를 보조 치아로써 달고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기엔 조금은 빗나간 것 같은 생각도 들긴 한다. 굳이 변명한다면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것, 손톱 발톱과 같다고나 할까. 그래서 가볍게 응했고 그만큼 덕도 보았다. 한데, 이것을 장기의 교체로까지 확대해서 생각하려 한다면 입은 다물고 만다. 그럴 것이다. 내가 이를 해 넣은 것이나 장기의 일부를 잘라버리거나 바꾸는 것의 차이를 굳이 달리할 수 없는 것은 내 식견의 한계일 수 있다고 하면서 슬며시 논점에서 새어 버린다면 그만일 것이다. 거창한 생명윤리 따위는 모르니 제쳐놓고, 우주 질서의 한 부분으로 완성되려는 속성을 지닌 인간 생명을 생각할 때, 그에 쫓아서 삶을 산다면 반드시 무병장수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병, 고통 따위는 삶의 일

부분일 테니 굳이 마다하지 않을 터이고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임으로써 나를 완성하는 그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무나 동떨어진 잠꼬댄지, 생각게 한다.

그런데 속물, 내가 생각하는 이따위가 아무런 의미는 없는 것이니 이쯤 해서 내 발등을 내려다볼 수밖에 없다. 자식 된 도리를 하느라고 속에 담고 있는 마음을 내어 내 고집을 부릴 수는 없었기에 아무런 토도 달지 못하고 아내의 형제들끼리 이미 의논하여 진행되고 있는 수술의 절차를 잠자코 지켜볼 따름이니 그렇다.

내 지나온 그날에, 아버지의 병을 어찌하지 못하여 먼 산 보며 애태우던 어느 날에, 약에 쓰신다고 하시며 복사꽃을 따러 나서시는 어머니를 따라 ‘덕주골’로 가던 생각, 허리 병 때문에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안에서 유희(遊戱)하던 여동생을 두고 발걸음 옮길 수 없었던 생각, 이 모두 딴 세상을 사는 지금 내 심금(心琴)을 울리고 있다.

의료시설에 기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시절의 일이긴 해도 아쉬움은 가시지 않는, 그때의 일이다. 어찌할 수 없었던 유년 시절의 일이긴 해도 새록새록 생각남은 아마도 지금의 나와 동떨어진, 그때의 내 마음 한구석에 납덩이같이 무겁게 가라앉았던 쓰라린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버지나 여동생이나 지금처럼 화려한 시설에 접할 수 없었던 1930년대의 일이었으니 비겨 볼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런 일이 지금에 일어났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이율배반이긴 하지만 나 역시 무조건 병원으로 모셨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이제까지 뇐 것은 말짱 허울이라고 할 것인지!

나를 제외한 모든 이가 병원과 깊은 인연을 맺고 사는 오늘에, 나 홀로 있어 더구나 외롭다. 하지만 내가 의지하는 곳, 나를 낸 실마리가 있겠으니, 거기에 기대어 위안을 얻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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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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