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스트레스는 생존력을 더한다.
(세계적 역사가 토인비박사가 즐겨 하던 이야기이다.)
북쪽 바다에서 청어 잡이를 하는 어부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먼 거리의 런던까지 청어를 싱싱하게 살려서 운반하는가의 문제였다. 어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배가 런던에 도착해 보면 청어들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그러나 꼭 한 어부의 청어만은 싱싱하게 산채로 있는 것이었다. 이상히 여긴 동료 어부들이 그 이유를 물어 보았으나 그 어부는 좀체 그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침내 동료들의 강요에 못이긴 어부가 입을 열었다. “나는 청어를 넣은 통에다 메기를 한 마리씩 집어넣습니다.”
그러자 동료 어부들이 놀라 물었다. “그러면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지 않습니까?” 어부는 말했다. “네, 메기가 청어를 잡아먹습니다. 그러나 놈은 청어를 두세 마리밖에 못 잡아먹지요. 하지만 그 통 안에 있는 수백 마리의 청어들은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쳐 다니지요. 런던에 올 때까지 모든 청어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헤엄치고 도망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먼 길 후에 런던에 도착해 봐도 청어들은 여전히 살아 싱싱합니다.”
메기로부터 살아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청어들을 건강하게 살아있게 한 것이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촉진제가 된다고들 하지요. 또 삶에 있어. 이들의 생의 애착이 그렇지 못한 이들보다 더 강하다고도 합니다. 어쩌면, 일어나 걸어가게 하는 생존의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