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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강림하면 촛불은 꺼지기 마련

평범해 보이는 집안 풍경이다. 풍성한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은 독서에 몰두한 나머지 대천사 가브리엘이 지금 막 큰 날개를 접으며 방으로 들어온 줄도 모르고 있다. 그녀는 성모(聖母) 마리아다. 천사는 그녀가 곧 성령(聖靈)의 힘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임을 알려주러 왔다. 흔히 '수태고지(受胎告知)'라고 하는 이 장면은 15세기 북유럽 르네상스의 거장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1375~1444)이 그린 '메로드 제단화'의 중앙 패널을 차지하고 있다. 패널 세 폭이 연결되어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진 이 제단화는 19세기에 마지막 소장자였던 벨기에 귀족 메로드가(家)를 딴 이름이 붙었다.

캉팽 '메로드 제단화 중 수태고지' - 1425~1428년경, 목판에 유채, 64×63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클로이스터 분관 소장. 중세 채색 필사본의 삽화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캉팽은 창문에 박힌 못 하나하나와 흰 수건의 접힌 자국, 펼쳐진 책의 글씨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사물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이 모든 물건은 실은 종교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테이블 위의 책과 두루마리는 각각 신약성서와 구약성서다. 하얀 백합, 벽에 걸린 흰 수건과 물주전자는 모두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한다.

잉태의 기적은 이미 시작되었다. 왼쪽 벽의 동그란 창에서 황금빛 광선과 함께 조그만 아기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성모 마리아를 향해 날아들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의 양초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꺼져버린다. 세상의 빛인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으로 내려왔으니 더 이상의 불빛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듯한 정교한 묘사와 곳곳에 숨어있는 상징, 그리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영롱한 화면이 바로 이탈리아 미술의 고전적인 미감과는 다른 북유럽 회화의 매력이다.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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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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