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별 위험 질환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속설인데도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다. 혈액형 성격설이란, 사람의 성격이 혈액형에 의해 결정되거나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 테스트인 MBTI의 원조 격이다. 지난해 한국갤럽이 성인 남녀 15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혈액형에 따라 사람들의 성격에 차이가 있다’고 답했다. 학자들은 터무니없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난하지만, 한국인 10명 중 6명은 ‘혈액형 성격설’을 여전히 신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방영된 인기 짝짓기 프로그램에서도 40대 미혼 남성들이 ‘혈액형이 뭐냐?’면서 여성들을 탐색해 화제가 됐다. 참고로 한국갤럽은 11년 전인 2012년에도 똑같은 설문 조사를 진행했었는데, 그때도 응답자의 58%가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다고 답했다.
혈액형 성격설에 따르면, A형은 꼼꼼하고 O형은 너글너글, B형은 마이페이스, AB형은 괴짜스럽다./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이웃나라 일본에도 한국처럼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문화가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성격 유형 분석보다는 오히려 혈액형과 질병의 상관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혈액형이 사람의 성격은 100% 파악하지 못하지만, 어떤 질병에 더 잘 걸릴 것인지는 잘 예측한다는 것이다. 일본 오카야마대학 의학부의 나카오아츠노리(中尾篤典) 교수는 작년에 출간한 ‘거짓말같은 인체 비밀을 대학 교수가 설명해 드립니다’ 저서에서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O형은 A형이나 B형, AB형과 비교해서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다”고 말했다. 나카오 교수는 혈액형에 따라 취약한 질병이 있다는 사실을 다수의 해외 논문들을 활용해 소개했다. 스웨덴대학 연구(2010년)에 따르면, A형의 위암 발병 리스크는 O형의 1.2배였다. 또 2019년 미국국립암연구소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B형의 췌장암 리스크는 O형의 1.72배에 달했다. B형은 제2형 당뇨병(인슐린 생성·활용 능력 저하로 혈당이 높아져서 생기는 만성 질환) 환자가 될 확률 역시 O형의 1.21배였다.
혈액형 성격설을 믿는 사람들의 절반은 가장 좋아하는 혈액형으로 O형을 꼽았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단일 질환으로는 사망률 1위인 뇌졸중(중풍)은 어떨까. 뇌졸중은 뇌혈관이 갑자기 막히거나 터져서 생기는 질환이다. 나카오 교수에 따르면, 뇌졸중 발생 위험도는 AB형에서 가장 높다. 2014년에 발표된 미국 논문(ABO blood type and stroke risk)에 따르면, AB형의 뇌졸중 발병 확률은 O형의 1.83배에 달했다. 또한 같은 해 발표된 또 다른 미국 논문에 따르면 AB형은 치매에 걸릴 확률이 O형의 1.82배로 높았다. O형의 뇌졸중 발병 확률이 혈액형 중에 가장 낮은 이유에 대해, O형은 다른 혈액형과 달리 적혈구에 항원이 없어서 혈액이 응고될 확률이 낮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긴 하다. 참고로 혈액형은 적혈구에 어떤 항원이 있는지에 따라 나뉜다. A형 적혈구에는 A항원, B형에는 B항원, AB형에는 두 항원이 전부 있다. 하지만 O형에는 항원이 없다.
한국에선 혈액형 중에 A형이 가장 많다./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나카오 교수는 이어 “O형은 혈액이 잘 굳지 않아서 혈전(혈액이 뭉치는 것)이 원인인 질환 발병률이 다른 혈액형에 비해 낮은 편”이라며 “반면 A형, B형, AB형은 심근경색 리스크가 O형의 1.25배,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심부정맥혈전증·다리 깊숙한 곳에 있는 정맥에 혈전이 생기는 질환) 위험은 O형의 1.8배 높다”고 말했다. “O형은 다른 혈액형과 비교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은 편인데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O형은 다른 혈액형에 비해 질환이 생길 가능성은 낮지만, 대신 대량 출혈이 예상되는 큰 상처를 입으면 사망률이 다른 혈액형의 배 이상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나카오 교수 저서에서 발췌) 지난 2021년 일본 타카야마 와타루 도쿄의과치과대 교수 연구팀이 중상외상환자 901명을 분석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O형 환자의 사망률은 28%로, 다른 혈액형(11%)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연구팀은 O형은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피를 멈추게 하기 위한 중요한 인자 일부가 다른 혈액형에 비해 20~30% 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O형은 지혈 능력이나 혈액의 응고 능력이 약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나카오 교수는 “O형은 큰 사고를 당했을 때 다른 혈액형에 비해 피가 잘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 유념해서 평소 조심하면서 생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은 기자 입력 2024.01.16. 15:35 업데이트 2024.01.21. 11:1937 뇌졸중·치매 걸릴 확률, O형의 2배인 혈액형은 혈액형별 위험 질환 살펴봤더니 [왕개미연구소]/조선일보-
인간 혈액형은 44가지
[생리학 박사 나흥식의 몸이야기] 작년 국제수혈학회 보고서 발표 Rh 양성 음성으로도 나뉘어져 혈액형 성격설은 믿기 어려워 나흥식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입력 2023.04.06. 03:00 업데이트 2023.08.23. 19:18 0 많은 사람이 혈액형과 성격을 연관 지어 생각합니다. 이는 일본의 방송 작가 노미 마사히코가 쓴 책 혈액형 성격설에서 기원한 것으로, 이런 내용을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더 믿는 것 같습니다. 이 주장이 통하는 것은 한국인과 일본인 혈액형 A, B, O형 분포가 비슷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과테말라는 국민의 90% 이상이 O형이며 다른 중남미 나라도 비슷합니다. 인구 이동으로 중남미 혈액형 분포가 변하고 있지만, 이들의 먼 조상은 거의 100% O형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혈액형 성격설대로라면 중남미 사람은 거의 모두 O형 성격이어야 합니다. 코로나에 걸리면 A형의 사망률이 높듯이, O형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잉카 제국 사람 상당수를 희생시켜 멸망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그나마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국제수혈학회 2022년 보고에 따르면, 사람 혈액형은 ABO와 Rh 외에 MNS, Kell, Duffy 등 총 44가지가 있습니다. ABO식은 A, B, O, AB형이 있지만, Rh식은 양성과 음성뿐입니다. 사람의 혈액형 44가지가 모두 Rh식처럼 두 종류씩만 있더라도 경우의 수가 2의 44제곱인 약 180억이나 되니 세계 인구 80억을 훌쩍 넘습니다. 결과적으로 손가락 지문이 다 다르듯이 전 인류는 모두 제각각 혈액형을 갖는 셈입니다. 혈액형은 적혈구 막의 항원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성격과는 무관합니다. 혈액형 갖고 무리하게 성격을 구분하는 것은 비과학적이며, 상대방에게 실례를 저지르는 일이 됩니다.
혈액형 성격설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입력 2022.04.19. 03:00 A형은 온화하고 반성적이며 진중하고, B형은 조잘거리고 의지가 약하다. 독일에는 A형이 흔하고 식민지인과 집시에게는 B형이 많다.공장 노동자 중에 O형과 AB형이 주로 사고를 낸다. A형과 B형은 사고를 치는 경우가 적다.1932년,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에 소개된 혈액형과 성격에 관한 기사 내용이다. 20세기 초에 ABO 혈액형이 알려지면서 우생학자들은 민족 전체의 혈액형을 검사해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폴란드 생물학자 히르슈펠트는 병사들의 혈액형 중 유럽인에게는 A형이, 비유럽인에게는 B형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이 비율이 유럽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지표라고 주장했다. 일본 심리학자 후루카와 다케지는 이 연구를 접하고 혈액형을 성격과 연관해 A형은 진중하고, B형은 활동적이고, AB형은 모순적이며, O형은 호기심이 많다고 보았다. 그래서 O형과 B형이 많은 도쿄는 활동적 도시였고, A형과 AB형이 많은 교토는 활기가 없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네 가지 혈액형에 맞는 직장 목록이 만들어졌고, 구직자는 이력서에 혈액형을 적어야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혈액형에 근거한 우생학과 혈액형 성격론이 모두 유행했다. 경성제대 교수인 기라하라는 마치 유럽인처럼 일본인에게는 A형이 많지만, 조선인은 A형이 적다는 통계를 들먹이면서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열등하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혈액형을 인종적 우월성과 연결하는 우생학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지만 역시 사이비 과학인 혈액형 성격설은 일본과 한국에서 살아남았다. 혈액형 성격설을 믿지 않는 호주나 대만 젊은이에게 테스트해 보면, 혈액형 성격이 근거가 없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데 일본의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테스트는 이 둘의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혈액형 성격설을 받아들이면 이에 맞추어 자기 성격을 정의하고 조금씩 바꿔나가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불렀고,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이 정신 과학의 루핑(looping) 효과라고 명명한 현상이다. 혈액형만 그럴까? 과학계가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하지만 MBTI, 별자리 사주, 관상, 풍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