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낭무구(括囊無咎) 말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도 없다
윤선도(尹善道·1587~1671)가 78세 나던 1664년에 주부 권념(權惗)이 편지를 보내 윤선도의 과격한 언행을 심하게 질책했다. 윤선도가 답장했다. “주신 글을 잘 보았소. 비록 일리는 있다 하나 어찌 매번 이처럼 거리낌 없이 함부로 말하시는가? ‘주역’에 ‘주머니를 묶으면 허물이 없다(括囊無咎)’고 했고, 전(傳)에는 ‘행실은 바르게 하고 말은 겸손하게 한다(危行言遜)’고 했소. 자기에게 잘못이 없어야 남을 비난한다는 것이 지극한 가르침이긴 하오. 하지만 내가 이를 했던 것은 선왕의 남다른 예우를 추념하여 지금의 전하께 보답하고자 해서,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던 것이오. 모름지기 자세히 살펴서 삼가야 할 것이네. 다른 사람의 저격을 받을까 염려하오.”
왜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느냐는 상대의 타박에, 입 닫고 가만있으면 허물이야 없겠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말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말한 속뜻은 살피지 않고, 이렇게 멋대로 힐난하니 너나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오간 말이 살벌한데 정작 편지의 앞뒤 글은 단정하게 예를 갖춰 막 나가지 않았으니, 그 절제가 참 인상적이다.
글 속의 괄낭무구(括囊無咎)는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이 없다는 말이다. 주머니는 입으로, 말을 삼가 조심하면 해로움이 없다는 의미다. ‘주역’ ‘곤괘(坤卦)’의 원문에는 “주머니를 잘 여미면 허물도 없고 칭찬도 없다(括囊無咎無譽)”고 했다. 허목(許穆·1595~1682)도 “많은 실패가 말 많은 데 달렸다(多敗在多言)”고 했다.
그렇지만 꼭 해야 할 말이 있는데, 제 한 몸 보존하자고 입을 닫아 침묵하면 그것은 옳은가? 이익(李瀷·1681~1763)이 ‘성호사설’의 ‘반금인명(反金人銘)’에서 말했다 “군자의 말은 이치에 맞는 것을 힘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데 말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 된다(可與言, 而不與之言, 爲失人)’고 했다. 하물며 사람이 조정에 설 경우 아는 것을 말하지 않음이 없고, 직분을 다한 뒤에야 그만둔다.” 주머니를 잘 여미란 말은 말을 가려 하란 말이지, 할 말도 하지 말란 뜻은 아니다. 진실을 외면해서 얻은 무구(無咎)라면 그것이 어찌 훈장이 되랴!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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