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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무은(事師無隱)



퇴계 이래 남인들의 공부법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열린 토론의 자세랄까? 권위를 존중하되 권위에 끌려다니지 않았다. 질문과 비판에 늘 열려 있었다. 성호 학파의 학통에도 이 토론의 정신은 모든 학문 활동의 근저에서 생생하게 작동했다.

남의 얘기를 듣고 풀이하는 데 멈추지 않고, 거기에 내 안목이 실려야 비로소 내 해석이 나온다. 그러자면 자득(自得)이 있어야 하고, 자득은 회의(懷疑)와 의심에서 비롯된다. 정말 그럴까? 이렇게 볼 수는 없나? 회의가 의문을 만들고, 의문이 질문으로 발전해 마침내 깨달음으로 점화되어야 한다. 기성의 권위를 그대로 따르면 내 뜻이 없다. 그렇다고 억지로 회의해서 덮어놓고 의심부터 하려 드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는 잘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태도는 더 큰 문제다.

이익(李瀷·1681~1763)은 퇴계의 문인 조진(趙振·1535~?)이 스승의 예설을 갈래지어 정리한 책에 써준 서문 ‘이선생예설유편서(李先生禮說類編序)’에서 퇴계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선생은 다른 사람의 말이 비록 하찮더라도 반드시 살폈고, 좋은 점이 있을 경우 채택하지 않음이 없었다. 도덕을 이룬 뒤에도 잘못을 고치느라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표정과 말에 털끝만큼이라도 인색하고 막힌 것을 보인 적이 있겠는가?” 스승의 예설을 정리한 조진에 대해서는, “의리라는 것은 천지 사이의 공변된 물건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으며, 저편도 없고 이쪽도 없으니, 사람의 높고 낮음을 가지고 이를 배척해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책 속의 각 조목 아래에는 여러 학설을 모아서 첨부했는데, 비록 선생의 학설과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 수록하였다. 감히 경중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라, 실로 선생의 포용하는 법도를 체득하여, 가만히 ‘스승을 섬김에 감춤이 없다(事師無隱)’는 뜻에 따른 것이다.”

“스승을 섬김에는 범함이 없고 감춤도 없다(事師無犯無隱)”는 말은 ‘예기(禮記)’ ‘단궁(檀弓)’에 나온다. 스승이 오류를 범했을 때 대놓고 반박하지 않고 예를 갖추되, 그 잘못에 대해서는 그대로 눈감지 않고 곡진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범하지 않겠다고 숨기기 시작하면 권위는 그때부터 무너진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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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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