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번 - 빙
■ 번문욕례 繁文縟禮
[번거로울 번/글월 문/번거오울 욕/예도 례]
☞ 문도 번거롭고 예도 번거롭다. 규칙, 예절, 절차 따위가 번거롭고 까다로움. 번거로운 관청절차를 가리키는 말. 번문욕례는 일반적으로 행정사무를 지연시키고 행정비용을 증대시키며 관료부패의 원인을 제공하는 등의 역기능을 초래한다 ≒ 繁縟, 繁忙
[예문]▷ 민중유교는 통과의례의 이와 같이 유익한 기능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하여 허례허식적인 기왕의 번문욕례를 삭제한 다음 고상하면서도 간결한 현대가정의례를 새롭게 연구하는 바이다. <서정기 著 『민중유교사상』중에서>
▷ 그러나 사무직원들은 성화에 아랑곳없이 신중한 번문욕례를 거친 다음에야 문서를 건네주면서….≪신상웅, 심야의 정담≫
▷ 상례는 어디까지나 돌아가신 분을 위한 예의 절차이므로 지키기가 까다롭고, 지나친 허례 허식은 오히려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상사(喪事)에 번문욕례(繁文縟禮)란 있을 수 없다. 오직 정성과 고인을 위하는 마음가짐 하나로 상사를 치러야 할 것이다.
■ 벌제위명 伐齊爲名
[칠 벌/나라 제/할 위/이름 명]
☞ 제나라를 공격하나 이름만 있다. 무엇을 하는 체하나 실상인즉 딴짓을 함
[내용]중국의 전국 시대에 연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제나라를 칠 때에 제나라의 장수 전단(田單)이 악의가 제나라를 정복한 뒤에 제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자, 연왕이 의심하여 악의를 불러들이었다는 데서 유래.
[예문]▷ 많이 위문 옵네 하고 몰려들어서는 잔치 집 모양으로 떠들썩하니 안에서도 거기 따라서 더운 점심을 짓네 어쩌네 하고 한층 더 부산한 것은 고사하고라도 사랑에들만 몰려도 좋을 것을 무슨 종회나 가족회의 하듯이 몰려서 뒤집어 엎는데는 머리가 빠질 일이다. 그러나 당자인 병인이 그렇게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니 어찌 하는 수도 없다. 그래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벌제위명으로 큰 일이나 보아주는 듯시피 입으로만 떠들어 대고 수군거렸지 누구하나 똑똑히 다잡아서 약 한 첩 조리 있게 쓰는 것도 아니다.[염상섭(廉想涉), 『三代』]
▷ 모두 본데없이 자라나서 불학무식하고 아무것도 모르지요. 그래서 청년회가 있대야 그저 벌제위명이지요.≪이기영, 고향≫
▷ 말씀하시기를 [연원을 많이 다는 것이 제도의 한 방법은 되나,벌제위명으로 입교만 시키는 것은 참 제도가 아니요, 신심이 확실히 설 때까지 자주 보살펴 주어야 참 제도를 받게 되나니, 이왕에 입교의 연원이 되었거든 제도를 받도록까지 꾸준히 공을 들여 참다운 연원이 되어야 할 것이니라.<원불교 교리>
■ 법삼장 法三章
[법 법/석 삼/글귀 장]
☞세장의 법조목, 진의 가혹한 법을 대신한 가장 간단명료한 법을 뜻함
[동]約法三章
[출전]『사기(史記)』고조본기(高祖本紀)
[내용]한(漢)나라 원년 10월에 유방(劉邦)은 진(秦)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패왕(覇王)이 되었다.유방은 진나라의 수도 함양(함양)에 입성하여 궁궐로 들어갔다. 그 궁궐은 호화스럽기 그지없었으며, 재물은 산같이 쌓여 있고, 후궁들의 수도 천 명도 넘었다. 유방은 그곳에 계속 머물고 싶었다. 유방의 이런 마음을 눈치 챈 장수 번쾌(樊쾌)가 말했다. “밖에서 야영을 하십시오. 이러한 재물과 후궁은 모두 진나라가 멸망하게 된 원인입니다. 이곳에서 머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유방이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자, 이번에는 장량(張良)이 간언했다. 지금 왕께서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진나라가 무도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에 들어와서 진나라와 똑같은 즐거움을 즐긴다면 진나라의 전철을 밟는 것입니다.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동에 이롭고,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좋다고 합니다. 번쾌의 말을 들으십시오.”
유방은 그래서 패상(覇上)으로 돌아가 야영을 했다. 그리고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가혹한 법에 시달렸습니다. 진나라의 법을 비방하는 사람은 온 집안 식구가 죽음을 당했고, 그것을 화제로 삼은 자도 시체가 되었습니다. 나는 먼저 관문(關門)에 들어온 사람이 왕이 된다고 약속하였으므로 관중(關中)의 왕이 될 것입니다. 나는 각 고을의 대표와 호걸들에게 약속하겠습니다. 법은 세가지만 둘 뿐입니다(法三章耳).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자와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정도에 따라 벌하겠습니다. 그 밖의 진나라 법은 모두 폐기 할 것입니다. 여러 관리와 백성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생활을 하십시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여러분들을 위해 해악을 제거하려는 것이지 괴롭히려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패상으로 돌아가서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제후가 이르기를 기다려서 약속을 정하려고 하는 것뿐입니다.”
[해설]
이렇듯 유방은 사람됨이 어질어 백성들을 사랑하였던 것이다. 진나라 백성들은 모두들 기뻐하며 유방이 왕이 되기를 바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약법삼장의 해석에는 이설(異說)이 있다. 즉, 약(約)은 절약 ·생략을 뜻하며, 진나라의 법을 폐지하고 다만 3장으로 생략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법삼장은 간단하고 요체를 파악한 것이기는 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부족하였기 때문에 얼마되지 않아서 재상 소하(蕭何)가 구장률(九章律)을 제정하였다고 한다.
[원문]父老苦秦苛法久矣, 誹謗者族, 偶語者棄市. 吾與諸侯約,先入關者王之, 吾當王關中.與父老約, 法三章耳 : 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 餘悉除去秦法. 諸吏人皆案堵如故. 凡吾所以來, 爲父老除害, 非有所侵暴, 無恐! 且吾所以還軍 上, 待諸侯至而定約束耳.
■ 벽창우 碧昌牛
[푸를 벽/성할 창/소 우]
☞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지방의 크고 억센 소.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비유
[동]벽창호
[예문]
▷벽창호같은 소리 말라 / 낸들 벽창호가 아닌 담에야 그만 생각이 없겠나?≪심훈, 상록수≫/ 내 것 내가 갖는데 누가 뭐랄 것인가 하는 벽창호 같은 고집으로 일관했고….≪박완서, 미망≫
▷엉터리.벽창호같은 여당만 의식하지 말고 민심을 생각해 민심이 우리당으로부터 떠나기 전에 등원하자--한나라당 의원총회 중에서.
[참고]매우 우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고집불통’, ‘고집쟁이’, ‘고집불통이’, ‘벽창호’, ‘목곧이’ 등으로 부른다. ‘고집(固執)’을 포함하는 단어들이 고집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나, ‘벽창호’나 ‘목곧이’가 그러한 의미로 쓰이는 것은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이다. ‘벽창우’는 ‘碧昌牛’인데, ‘碧昌’은 평안북도의 ‘碧潼(벽동)’과 ‘昌城(창성)’이라는 지명에서 한 자씩을 따와 만든 말이다. 따라서 ‘벽창우’는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된다. 이 두 지역에서 나는 소가 대단히 크고 억세어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것이라고 한다.
단어 구조로 보면 ‘벽창우’는 지명(地名)이 선행하고 그 지역에서 나는 특산물이 후행하여 그 대상의 이름이 된 예이다. ‘안주(安州)’에서 나는 ‘항라(亢羅)’라는 뜻의 ‘안주항라’가 줄어든 ‘안항라’, ‘명천(明川)’에서 나는 ‘태(太)’라는 뜻의 ‘명천태’가 줄어든 ‘명태’, ‘통영(統營)’에서 나는 ‘갓’이라는 뜻의 ‘통영갓’ 등도 지명과 그 지역 특산물을 복합하여 만든 물건 이름이다.그런데 같은 단어 구조라 하더라도 ‘벽창우’는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 ‘안항라’, ‘명태’, ‘통영갓’ 등이 그 특산물의 이름에 충실한 반면, ‘벽창우’는 그러한 기능도 가지면서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비유적으로 확대되어 쓰일 때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띤다. ‘벽동’과 ‘창성’에서 나는 소가 매우 억세기 때문에 그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러한 비유적 의미가 나온 것이다.그런데 ‘벽창우’가 비유적 의미로 쓰일 때는 ‘벽창우’보다는 ‘벽창호’로 더 많이 쓰인다. “벽창호 같다”라는 관용구의 ‘벽창호’가 바로 그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변하여 그 비유적 의미 기능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벽창우’가 ‘벽창호’로 바뀐 데에는 아마 이것을 “벽에 창문 모양을 내고 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의 ‘벽창호(壁窓戶)’와 혼동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빈틈없이 꽉 막힌 ‘벽(壁)’과 그러한 속성을 지닌 사람과의 연상이 ‘벽창우’를 ‘벽창호’로 바꾸게 하였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한편, ‘목곧이’는 ‘목 곧-’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목 곧-’은 신체 명사 ‘목’과 형용사 ‘곧-’이 결합한 구로 “억지가 세어 남에게 호락호락하게 굽히지 아니하다”의 의미이다. ‘목곧이’는 바로 그러한 속성을 지니는 사람을 뜻한다. 항상 ‘목’을 세워 ‘목’이 곧은 사람은 십중팔구 자기밖에 모르는 고집쟁이일 것이다--<충북대--조항범>
■ 변화무쌍 變化無雙
[변할 변/화할 화/없을 무/쌍 쌍]
☞ 세상이 변하여 가는 것이 더할 수 없이 많고 심하다.
[예문]흥미로운 게임이었다.유럽과 아시아의 최강 팀들이 만났고 한국의 전력을 테스트할 기회였기 때문이다.전반전에는 프랑스 미드필더진의 변화무쌍한 움직임에 당황하면서 압도당했다<히딩크 감독>
■ 병가상사 兵家常事
[군사 병/집 가/항상 상/일 사]
☞ 병가에는 항상 있는 일. 흔히 있는 일. 또는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이니 낙심할 것 없다..
[속담]한번 실수는 병가상사
[예문]
▷ 아 하하하! 옳지 알았다.너희들이 오입쟁이 중이 아니면 땡땡이 중이로구나.그렇다면 너희들 내 말을 명심해서 잘 들어라.한번 실수는 병가상사라 하였으니 이제부터 마음을 고쳐먹고 염불공부를 시작하는데 만약 틀리는 놈이 있으면 이 곤장으로 치도곤을 놓을테다. 알겠느냐?-<송파산대놀이 >중에서
▷ 옷 로비 사건 위증 혐의 재판 결과와 관련해서도 이 사건에 전직(당시에는 현직) 검찰총장의 부인이 관련돼 있고,그녀에 대해 검찰의 입장과는 다른 판결이 나와 검찰의 입지가 궁색해진 건 사실이나 검찰의 주장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는 병가상사(兵家常事)라고 할 수도 있다.<국민일보>
■ 병문졸속 兵聞拙速
[군사 병/들을 문/졸할 졸/빠를 속]
☞ 용병(用兵)할 때는 졸렬하여도 빠른 것이 좋다
[출전]『손자(孫子)』
[내용]지금 전쟁은 전쟁용 수레 천 대, 수송차 천 대, 병사 십만 명으로 천 리나 떨어진 먼 곳까지 식량을 수송하려 하고 있다. 이처럼 큰 규모의 전쟁을 하려면 조정 안팎의 경비, 외교 사절의 접대, 군수 물자, 무기 보충 등 하루 천금이나 되는 막대한 비용이 소용된다. 이렇게 하여 싸움에서 이길지라도 장기간의 싸움은 군사들을 피폐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기 또한 저하시킨다. 이와 같이 된 이후에 당황하여 적을 공격하면 실패할 뿐이다. 그리고 병사들을 계속하여 전쟁터에 있게 하면 국가 재정은 위기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군사들이 피폐해지고 사기가 떨어지고 공격에 실패하여 국력을 소모하면, 그 틈을 타고 다른 나라가 침략해 온다. 이렇게 된 후에는 아무리 지혜로운 자가 나와도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
[해설]손자(孫子)는 싸움에 있어서는 지구전보다는 속전속결을 주장한 병법가이다. 손자가 신속한 싸움을 주장하게 된 이유는 지구전을 벌일 때의 불리한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손자는 단기간에 나라의 존망을 걸고 병사들의 힘을 규합하여 싸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싸움이 된다고 보았다.
■ 보우지탄 鴇羽之嘆
[능에 보/깃 우/어조사 지/탄식할 탄 ]
☞ 너새 깃의 탄식. 신하나 백성이 전역에 종사하여 부모님을 보살피지 못하는 것을 탄식함
[출전]『시경(詩經) 』보우(보羽)시
[동]보우지차(?羽之嗟)
[내용]푸드득 너새 깃 날리며 상수리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차기장 메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믿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한 곳에 안착할 것인가!
푸드득 너새 날개 치며 대추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메기장 차기장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엇 잡숫고 사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끝장이 날 건가!
푸드득 너새 줄지어 날아 뽕나무 떨기에 내려앉네
나라 일로 쉴 새 없어 벼 수수 못 심었으니
부모님은 무얼 잡숫고 지내시나?
아득한 푸른 하늘이여 언제면 옛날로 되돌아갈 건가
[원문]
肅肅苞羽 集于苞苞
王事靡監 不能藝稷黍
父母何?
悠悠蒼天 曷其有所
肅肅苞翼 集于苞棗
王事靡監 不能藝稷黍
父母何食
悠悠蒼天 曷其有極
肅肅?行 集于苞桑
王事靡監 不能藝稻梁
父母何嘗
悠悠蒼天 曷其有常
[참고]너새는 날개가 60센티, 꽁지가 23센티 가량이나 되는데, 기러기와 비슷하지만 부리는 닭과 유사하고 뒷발톱은 없는 새이다
[해설]진(晉)나라는 소공(昭公) 뒤로 오세(五世) 동안 더욱 정사가 어지러워졌다. 그리하여 전쟁터로 출정가는 일이 잦았는데, 이때 병사들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이다
■ 보원이덕 報怨以德
[갚을 보/원망할 원/써 이/덕 덕]
☞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
[출전]『노자(老子)』
[내용]인위적인 것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것을 한다.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자연적인 일을 한다. 인위적인 취미를 가진다.큰 것은 작은 것에서 생기고 많은 것은 적은 것에서 일어난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어려운 일은 쉬운일에서 계획된다. 큰 일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천하의 모든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된다.천하의 모든 큰 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이르므로 성인은 끝가지 크게 되려고 하지 않으므로 크게 될 수 있다.대개 가볍게 승낙을 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성이 적고, 너무 쉬운 일은 반드시 어려운 일이 많다. 이 때문에 성인은 도리어 쉬운 것을 어렵게 여기므로 마침내는 어려운 것이 없게 된다.”어떤 사람과 원수 관계가 되면, 그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자가 있고, 반면에 은덕으로써 갚는 자가 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일은 그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그러나 원한을 누그러뜨리고 은덕으로서 갚는다는 것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노자는 후자의 경우에 속한다.노자는 천하의 모든 일은 처음부터 크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작고 쉬운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다.
■ 복거지계 覆車之戒
[엎어질 복/수레 거/어조사 지/경계할 계]
☞ 앞수레의 엎어진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거울을 이르는 말로, 앞사람의 실패를 뒷사람이 교훈으로 삼는다는 뜻.
[출전]『후한서(後漢書)』
[내용]《후한서(後漢書)》의 〈두무전(竇武傳)〉과 《한서(漢書)》의 〈가의전(賈誼傳)〉에 나오는 말이다. 〈두무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품행이 방정하고 귀족의 속물적인 악습에 물들지 않은 두무의 딸이 황후가 되자 두무는 장관이 되었다. 이때 환관의 세력이 강해 그들의 횡포는 날로 더해갔다. 그러자 이응(李膺)과 두밀(杜密) 및 태학생(太學生)들은 환관들의 횡포를 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환관들은 자기들을 모함하였다는 죄로 그들을 체포한 ‘당고(黨錮)의 금’사건을 일으켰다. 두무는 이 사건을 환제에게 “만일 환관의 전횡을 이대로 방치해 두면 진나라 때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며, 엎어진 수레의 바퀴를 다시 밟게 될 것입니다[覆車之戒]”라고 진언하였으며, 결국 체포된 관리 전원을 풀어 주었다.
〈가의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전한(前漢)의 효제(孝帝)는 제후로서 황제가 된 사람이다. 그러자 세력이 강성한 제후들은 효제를 우습게 여겼다. 이를 염려한 효제는 가의, 주발(周勃) 등의 현명한 신하를 등용하여 국정을 쇄신하고자 하였다. 그 중 가의는 “엎어진 앞수레의 바퀴자국은 뒷수레의 거울이 됩니다[前車覆 後車戒]. 하(夏), 은(殷), 주(周)시대는 태평성대를 누린 나라입니다. 이를 본받지 않는 나라는 오래 버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이처럼 복차지계는 이전에 실패한 전철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역으로 생각하면 이전의 좋고 훌륭한 점은 귀감으로 삼는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가의전〉에 나타났듯이 전거복 후거계(前車覆 後車戒)라고도 한다. <두산 백과>* 전철을 밟지 마라. 복철을 밟지 마라
■ 복경호우 福輕乎羽
[복 복/가벼울 경/어조사 호/깃 우]
☞ 복은 새털보다 가벼운 것으로, 자기의 마음 여하에 따라 행복을 찾는다는 뜻이다.
[출전]『장자(壯子)』
[원문]福輕乎羽 幕之知載 禍重乎地 幕之知避.복경호우 막지지재 화중호지 막지지피
[내용]"복은 깃털보다 가벼운데 이를 지닐 줄 아는 사람이 없고, 화(禍)는 땅덩어리보다 무거운데 이를 피할 줄 아는 사람이 없다"
[해설]깃털은 매우 가벼워서 좀 많이 지녀도 그리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그리고 땅 덩어리는 지극히 무거워서 사람이 이를 감당하기가 참으로 어렵다.복은 쌓기가 쉬울 뿐 아니라 많이 지녀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으니 사람들은 복을 좀 많이 쌓고 지닐 법 한데 그렇게 하지를 않고, 화는 짓기가 무섭고 그 무게가 땅 덩어리처럼 무거운데 사람들은 이를 피할 줄을 모른다.사람은 누구나 복을 차지하고 싶고 화는 피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소망은 이루기가 매우 쉽다.복을 많이 쌓고 화를 적게 저지르기만 하면 된다. 가볍고 무거운 것의 차이만 가릴 줄 알면 된다. <이병한 서울대 명예교수>
■ 복룡봉추 伏龍鳳雛
[엎어질 복/용 룡/봉황 봉/병아리 추]
☞ 엎드려 있는 용과 봉황의 새끼라는 뜻으로, 초야에 숨어 있는 훌륭한 인재를 이르는 말.
[동]와룡봉추(臥龍鳳雛: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 용구봉추(龍駒鳳雛: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유]기린아 麒麟兒
[출전]『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
[내용]《촉지(蜀志)》의 〈제갈량전(諸葛亮傳)〉주(注)에 나오는 말이다. 제갈 량(181~234)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난세 속에 숙부를 따라 형주(荊州)의 양양(襄陽:지금의 후베이성 양양현)으로 피난왔는데 숙부가 죽자 양양의 서쪽에 있는 융중(隆中)에서 정착하였다. 그는 난세를 피해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유비(劉備)는 황건적(黃巾賊)의 난 속에서 별로 큰 전공을 세우지 못한 채 형주에 와서 유표(劉表)에게 의지하였다. 유비는 비로소 이때부터 인재를 찾으러 나섰다.어느 날 양양에 거주하고 있는 사마 휘(司馬徽)에게 시국에 대해 넌지시 묻자 사마 휘는 “글만 읽는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런 것은 이곳에 계신 복룡과 봉추가 잘 알지요”라고 대답하였다. 이 글에서 복룡봉추가 유래하였고,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복룡은 초야에 은거하고 있는 제갈 량이고, 봉추는 방통(龐統)을 가리킨다. 비록 제갈 랑과 방통이 초야에 묻혀 살고 있지만 그들의 재주는 비상하였다.이처럼 복룡봉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주와 지혜가 탁월한 사람을 말한다. 보통 제갈 량을 가리켜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고도 한다. 동의어는 와룡봉추(臥龍鳳雛:누워 있는 용과 봉황의 병아리), 용구봉추(龍駒鳳雛:뛰어난 말과 봉황의 병아리), 비슷한 말은 기린아(麒麟兒:재주와 슬기가 탁월한 사람)이다. <두산백과>
■ 복소무완란 覆巢無完卵
[엎어질 복/새집 소/완전할 완/알 란]
>☞엎어진 새집 밑에는 온전한 알이 없다. 근본이 썩으면 그 지엽(枝葉)도 따라서 썩는다
[출전]『후한서(後漢書)』 공융전(孔融傳)
[내용]후한시대(後漢時代) 공융(孔融)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으로 헌제(獻帝) 때 북해(北海)의 상(相)이 되어 학교를 세우고 유학을 가르친 학자이다. 그는 무너져가는 한나라 왕실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여러 번에 걸쳐 조조(曹操)에게 간언을 하다가 미움을 사서 피살된 인물이다.공융이 일찍이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에게 체포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공융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아홉 살이고, 작은 아들은 여덟 살이었다. 손권의 부하들이 공융을 체포하러 왔을 때, 두 아들은 마침 장기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하던 놀이를 계속하였다. 공융은 사자에게 이렇게 말했다."처벌은 나 혼자 몸에서 끝나게 해주시오. 두 아이는 다치지 않게 해주시오."이때 아들이 공융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 어찌 엎어진 새집 밑에 온전한 알이 있을 수 있습니까?" 두 아들 또한 체포되었다. 나뭇가지에 있는 새집이 땅에 떨어지면 그 안에 있던 알은 깨지고 말 것이다. 또한 뿌리가 썩은 나무에 가지가 온전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계시기에 자신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집안의 가장인 아버지가 체포되어 가는데 자신들도 벌을 받지 않고 어찌 집에 편안히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 복수불수 覆水不收
[엎을 복/물 수/아니 불/거둘 수]
☞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지 못한다. 한 번 저지른 일은 다시 어찌 할 수 없음을 이른다. 또는 다시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일이 그릇됨.
[동]覆水不返盆(복수불반분)-엎질러진 물은 동이로 돌이킬 수 없다.**동이 분/甑已破矣(증이파의) : 시루가 이미 깨졌다. 다시 본래대로 만들 수 없음.**시루 증/복배지수(覆杯之水), 이발지시 已發之矢-이미 떠난 화살
[유]낙화불반지(落花不返枝)- 한번 떨어진 꽃은 다시 가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 / 파경부조(破鏡不照)-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추지 못한다/ 파경부조(破鏡不照)-깨어진 거울은 다시 비추지 못한다 / 기호지세騎虎之勢
[속담]쏘아 놓은 화살이요 엎지른 물이다. / 깨진 거울은 다시 비춰지지 않는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
[출전]『拾遺記(습유기)』
[내용]:주(周)나라 시조인 무왕(武王:發)의 아버지 서백(西伯: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위수(渭水:황하의 큰 지류)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는 초라한 노인을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학식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백은 이 노인이야말로 아버지 태공(太公)이 '바라고 기다리던[待望]' 주나라를 일으켜 줄 마로 그 인물이라 믿고 스승이 되어 주기를 청했다.이리하여 이 노인, 태공망(太公望:태공이 대망하던 인물이란 뜻) 여상[呂尙:성은 강(姜) 씨, 속칭 강태공]은 서백의 스승이 되었다가 무왕의 태부(太傅:태자의 스승) 재상을 역임한 뒤 제(齊)나라의 제후로 봉해졌다. 태공망 여상은 이처럼 입신 출세했지만 서백을 만나기 전까지는 끼니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던 가난한 서생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부터 굶기를 부자 밥 먹듯 하던 아내 마(馬)씨는 그만 친정으로 도망가고 말았다.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 마씨가 여상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전엔 끼니를 잇지 못해 떠났지만 이젠 그런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아 돌아왔어요." 그러자 여상은 잠자코 곁에 있는 물그룻을 들어 마당에 엎지른 다음 마씨에게 말했다."저 물을 주워서 그릇에 담으시오." 그러자 이미 땅 속으로 스며든 물을 어찌 주워 담을 수 있단 말인가. 마씨는 진흙만 약간 주워 담았을 뿐이었다. 그러자 여상은 조용히 말했다.그대는 이별했다가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다 (若能離更合이나 覆水定難水라.)라 하고 마씨를 아내로 맞아 들이지 않았다.
■ 본말전도 本末顚倒
[근본 본/끝 말/넘어질 전/넘어질 도]
☞ 일이 처음과 나중이 뒤바뀜. 일의 근본 줄기는 잊고 사소한 부분에만 사로잡힘.
[예문]
▷ 이상호 기자 소환은 본말 전도
▷ 교원평가제 반대론 본말전도나 눈속임
▷ 출판사에 의해 '본말전도'된 박지성 기자회견
▷ 순환출자 규제 도입 추진… 기업"투자위축등 본말전도 행태
▷ 외교부에서 사관 검토에 대해서는 신중하자는 의견을 냈다. 사관의 문제로 흘러갈 경우 불필요한 학문 외적 논쟁이 유발되는 등본말이 전도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결국 사관을 문제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것을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수정하라’는 식으로 자구(字句)만 문제삼은 것도 아니다. 전체적인 서술 방식을 중시했다--[日왜곡교과서 재수정 요구]이무성 국사편찬위원장 인터뷰
■ 본연지성 本然之性
[근본 본/그럴 연/어조사 지/성품 성]
☞ 사람이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심성. 지극히 착하고 조금도 사리사욕이 없는 천부자연의 심성. 성리학의 심성론에서 유래
[내용]천명지성(天命之性) 또는 천지지성(天地之性)이라고도 한다. 성리학에서는 사람의 성(性)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나눈다. 주자에 따르면, 본연지성은 천부자연의 심성으로 지선(至善)이다. 기질지성은 타고난 기질과 성품을 가리키는데, 타고난 기질의 청탁(淸濁)과 편색(偏塞:편벽되고 막힘)에 따라 선하게도 나타나고 악하게도 나타난다.이기론으로 말하면, 본연지성은 이(理)에 해당되고, 기질지성은 기(氣)에 해당된다. 그런데 기질지성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수양에 따라 탁한 것[濁]을 맑은 것[淸]으로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유가(儒家)에서는 기질을 정화시켜 지선의 본연지성을 회복하여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유가에서 이상으로 삼는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차이점은, 성인은 기질이 맑아서 본연지성이 잘 발현되는 반면에 범인은 기질이 탁하여 본연지성이 잘 발현되지 않는 데 있다.
[예문]
▷그는 인간의 본연지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다.
▷현대 사회는 과학과 기술에 바탕한 지식·정보가 모든 인간적 가치관에 우선하는 感性的·主氣的 사회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현대인이 비인간화, 객체화, 물질화의 激浪 속에서 표류하고 있음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탈출은 아주 시급한 문제이며, 그 방법은 '명상'과 '지경'을 통하여 '본연지성'을 깨닫는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의 '중용의 도'--김명하>
■ 본제입납 本第入納
[근본 본/집 제/들 입/들일 납]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겉봉 표면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
[참고]--편지 봉투를 쓸 때 이름 아래 붙이는 칭호 /氏(시) : 나이나 지위가 비슷한 사람에게 존경의 뜻으로 쓸 때. /貴中(귀중) : 단체에 쓸 때. /님께 : 순 한글식으로 쓸 때. /女史(여사) : 일반 부인에게 쓸 때. /大兄(대형), 人兄(인형), 雅兄(아형) : 남자끼리 친하고 정다운 벗을 높여 쓸 때./座下(좌하) : 마땅히 공경해야 할 어른〔조부모(祖父母), 부모(父母),선배(先輩), 선생(先生)〕 에게 쓸 때. /先生(선생) : 은사(恩師)나 사회적으로 이름난 분에게 쓸 때./畵伯(화백) : 화가를 높여 쓸 때. /貴下(귀하) : 상대방을 높여 쓸 때. /君(군), 兄(형) : 친한 친구에게 쓸 때. /孃(양) : 처녀로서 동년배(同年輩) 혹은 아랫사람에게 쓸 때. /展(전) : 손아랫사람에게 쓸 때.
▷봉투의 글씨 /받는 사람의 성명은 정자로 쓴다./받는 사람의 이름은 주소의 글씨보다 좀 크게 하여 중앙에 쓴다./보내는 사람의 주소와 성명은 조금 작게 쓴다./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생략하지 않고 정확하게 쓴다.[봉투의유래]--미국 작가 A. 비어스는『악미의 사전』에서 봉투를“서류를 매장하는 관, 연애편지를 넣는 옷”이라고 정의하였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도 봉투를“이루지 못한 연문의 관통(관통)이요, 사랑을 거절하는 답장의 칼집”이라 했다. 봉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바빌로니아의 흙봉투에 다다른다. 당시 제왕 또는 권력자만이 보아야 하는 문서는 여느 사람이 볼 수 없게끔 해야 했는데, 그 시절 점토판에 글을 냵기로 그 점토판을 포개어 양끝을 이겨서 봉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낙랑시대 유물로 이 흙봉투가 출토되어 있다. 봉니(封泥)가 그것이다. 봉투란 단어는‘구부려 덮어 봉한’데서 유래했다.
■ 봉고파직 封庫罷職
[봉할 봉/곳집 고/파할 파,내칠 파/맡을 직]
☞ 부정을 저지른 관리를 파면(罷免)시키고 관고(官庫)를 봉하여 잠그는 일
[동]봉고파출(封庫罷黜), 봉고(封庫)
[내용]어사(御史)나 감사(監司)가 부정한 관리를 파면하고, 그 창고를 봉하여 잠그는 것을 가리킨다. 관가의 창고를 봉하여 잠근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관리의 업무 수행을 정지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
왕의 밀명으로 파견되었던 어사는 지방을 다니면서 관리들의 잘잘못을 살핀 뒤, 어진 관리는 청백리(淸白吏)라고 하여 상을 주고, 탐관오리(貪官汚吏)는 봉고파직을 시켰다. 어사가 출도하면 사열문박, 반열창고, 심리원옥, 유치죄인 등으로 수령의 업무에 대한 적정여부를 확인하였다. 불법사실이 발견되면 불법문서의 현착⇒ 봉고⇒ 서계⇒ 파직의 4단계를 거쳐서 처리하였다.<네이버백과>
[예문]
▷ 이 때 수의 사또 분부하되 "이 골은 대감이 좌정하시던 골이라, 훤화(喧譁)를 금하고 객사(客舍)로 사처(徙處)하라." 좌정(座定) 후에 "본관은 봉고 파직(封庫罷職)하라." 분부하니...<춘향전>중에서,
▷ 마땅히 벌책이 내려 봉고파직을 당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최동진은 여전히 다른 골 현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유현종, 들불≫ /봉고파직이나 진배없이 망신당한 이상규는 새 목사가 도임하여 인신을 넘겨주기까지는 오도가도 못하고 동헌에 엉거주춤 머물러 있어야 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부마 駙馬
[곁말 부/말 마]
☞ 임금의 사위/공주의 부군(夫君)
[출전]『搜神記(수신기』
[원]駙馬都尉
[내용]옛날 농서 땅에 신도탁이란 젊은이가 있었다.그는 이름 높은 스승을 찾아 옹주로 가던 중 날이 저물자 어느 큰 기와집의 솟을 대문을 두드렸다.하녀가 나오자"옹주로 가는 길인데 하룻밤 재워줄 수 없겠습니까?"하녀는 그를 안방으로 안내하여 식사까지 대접하였다. 식사가 끝나자 안주인이 들어왔다."저는 진나라 민왕의 딸이온데 조나라로 시집갔다가 남편과 사별하고 이제까지 혼자 살고 있습니다.그런데 오늘 이처럼 찾아주셨으니 저와 부부의 연을 맺어 주세요"신도탁은 사양을 하다가 결국 3일을 같이 지내게 되었다.여인은 슬픈 얼굴로 말햇다.더이상 같이 있으면 화를 당하게 됩니다."하며 정표로 금베게를 주었다.대문을 나선 신도탁이 뒤돌아보니 기와집은 간데 없고 무덤만 있을 뿐이었다.신도탁은 금베게를 팔아 음식을 사 먹었다.그후 왕비가 금베게를 저자거리에서 발견하고 신도탁을 잡아다가 경위를 알아본 다음 공주의 관을 열어보니 금베게만 없었다.모든 사실이 신도탁의 말과 부합하자 왕비는 신도탁에게 내 사위라 하며 駙馬都尉(부마도위)라는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원문]乃遣人發 啓柩視之 原葬悉在 唯不見枕 解體看之 交情宛若 秦妃始信之 歎曰 我女大聖 死經二十三年 猶能與生人交往 此是我眞女 也 遂封度爲駙馬都尉 賜金帛車馬 令還本國
[예문]
▷ 부마로 삼다
▷ 부마를 뽑다
▷ 임금의 부마가 되다.
■ 부언시용 婦言是用
[지어미 부/말씀 언/이 시/쓸 용]
☞
여자의 말을 무조건 옳게 쓴다. 줏대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다.
[출전]『書經』, 周書篇
[내용]: 殷나라의 주왕(紂王)은 달기라는 요부(妖婦)에게 빠져 그녀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었고 주색(酒色)을 즐겨 매일같이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어진 신하들을 멀리하고 일족(一族)들 마저도 돌보지 않았다. 그런 까닭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피폐해지고 세상은 혼란하여 여기저기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 때 「무왕이 말하기를 옛 사람의 말에‘암탉은 새벽에 울지 아니하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오직 집안이 망할 뿐이다.’(王曰 古人有言曰 牝鷄無晨이니 牝鷄之晨이면 惟家之索이라.)’.이제 상(은)나라의 왕 수(주왕)는 오직 부녀자의 말만 옳다고 여겨서 따른다(今商王受 惟婦言是用)"라고 하였다( ** 牝(암놈 빈) 索(쓸쓸할 삭)
[해설]이 구절에 나오는 암탉과 부녀자는 주왕의 애첩 달기를 가리키는데, 주왕은 어질고 현명한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달기의 말만 들었다. 부언시용은 줏대없이 여자의 말을 잘 듣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 부중지어 釜中之魚
[솥 부/가운데 중/어조사 지/물고기 어]
☞ 솥안의 물고기, 삶아지는 것도 모르고 솥 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눈앞에 닥칠 위험도 모른 채 쾌락에 빠져 있는 사람을 뜻함
[동]유어부중 游於釜中:솥 속에서 놀다/ 轍?之急(철부지급) : 수레바퀴 자국의 괸 물 속에 사는 붕어. /不免鼎俎(불면정조) : 솥에 삶아지고 도마에 오르는 것을 면치 못함. / 조상지육(俎上之肉:도마 위에 오른 고기)
[출전]『자치통감(自治通鑑)』, 한기(漢記)
[내용]後漢(후한)말께 20여년간 황제의 외척인 梁翼(양익)형제는 권력을 멋대로 휘둘렀다.양익이 대장군이 되고 그의 아우 不疑(불의)가 하남 태수가 되었을 때 그들은 여덟 명의 使者(사자)를 각 고을에 파견, 순찰하도록 했다. 그 여덟 명의 사자 중에는 張綱(장강)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烙陽(낙양) 숙소에다 수레바퀴를 묻어버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산개와 이리같은 양익 형제가 요직을 차지하고 설쳐대는데 여우나 살쾡이 같은 지방 관리들을 조사하며 돌아다닌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면서 장강은 도처에 양익 형제를 탄핵하는 15개 조항의 상소문을 올렸다. 이 때문에 장강은 양익 형제의 미움을 사서 광릉군의 태수로 쫓겨났다. 더구나 광릉군은 양주와 서주 지방을 10여년간 휩쓸고 다니는 장영이 이끄는 도적떼의 근거지다. 광릉군에 부임한 장강은 곧바로 혼자서 도적떼의 소굴을찾아가 장영에게 간곡히 귀순을 권했다. 장영은 장강의 설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울면서 말했다. "벼슬아치들의 가혹한 처사에 배기다 못해 모두가 모여서 도적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목숨이 붙어있지만 마치 솥 안에서 물고기(釜中之魚)가 헤엄치는 것과 같아 결코 오래 갈 수는 없겠지요." 이리하여 만여 명의 도적들은 모두 항복했고 장강은 그들에게 큰 잔치를 베푼 뒤 모두 풀어주었다.
[원문]網 單車 徑詣 壘門 請與相見 譬曉之 曰 汝等若是 相取久存命 其如釜中之魚 必不久之 等萬餘人 降
■ 부창부수 夫唱婦隨
[지아비 부/부를 창/지어미 부/따를 수]
☞ 남편이 부르면 아내가 따른다. 남편의 주장에 아내가 따름. 부부의 화합.
[예문]
▷ 도서관 하는 남편에 소나무가 되자는 아내.'부창부수'란 말이 딱 맞는 듯했다. / 김지호도 현재 EBS 요리프로그램 '최고의 요리비결'의 MC로 출연하는 등 요리에 관한한 부창부수를 자랑한다.
▷ 아내를 향해 ‘손님에게 연잎 차 좀 내드리라’고 했다.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그의 아내는 ‘연밥이 품은 씨앗은 천년을 가도 싹이 나지 않는대유. 그래서 상처를 내서 심어야 싹이 나쥬’ 해가며 ‘남편이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이사 왔쥬’라고 했다.<2006.세계일보>
▷부창부수 수잔 서랜든 부부가 비슷한 시기 에 각자 의미있는 상을 받아 화제. 아내 수잔이 미국 인권 센터에서 수여하는 명예상을 받은 데 이어 남편 팀 로빈스가 [내셔널 보드 오 브 리뷰 영화상]에서 특별업적상을 받은 것. <채널아이 월간스크린>
▷ 사극은 대사가 워낙 많아 연기자들 사이에 사극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화하기 어렵지만두 사람은 부창부수(夫唱婦隨)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중앙일보>
▷ 간나희 가는 길흘 사나희 에도듯이 사나희 녜는 길흘 계집이 치도듯이 제 남진 제 계집이 아니어든 일홈 묻지 마오려.
■ 부화뇌동 附和雷同
[붙을 부/화할 화/우뢰 뢰/같을 동]
☞ 소신없이 남의 의견을 그대로 좇아 따르거나 같이 행동하다.
[유]追友江南(추우강남) : 친구따라 강남간다.
[출전]『예기(禮記)』곡례(曲禮) 상(上)
[내용]“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말처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말라. 옛날 성현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를 하라.” 이것은 아랫사람이 손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절을 설명한 것이다.또 <논어(論語)>“자로(子路)”편에도 이런 말이 보인다.“공자가 말하기를,‘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子曰,君子和而下同, 小人同而不和).”공자의 말은 이러한 뜻이다. 군자는 남을 자기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이이기을 좇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행동하지만 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부화뇌동’이란 결국 우뢰가 한번 치면 천지 만물이 이에 응하여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 다른 사람의 말이 옳고 그른지를 헤아리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공명정대한 명분이나 사리 판단보다는 이해 관계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문]正爾容 聽必恭 毋 說 毋雷同 必則古昔 稱先王 附和之謂雷同 如雷之發聲而物同應之也
[예문]
▷ 사또는 교자를 탄 채 그 앞을 호기 있게 지나치면서, 장차 대정민에게 부화뇌동한 자는 엄벌에 처하겠노라고 큰소리로 으름장 놓곤 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이 군은 일본놈들 또는 그들에게 추종하는 놈들과 부화뇌동하지 않고 우리와 같은 운명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였으니 진심으로 환영해야 될 줄 압니다.≪이병주, 지리산≫ / 평소에는 친하지 않던 그들이 갑자기 서로 부화뇌동하여 일을 꾸미기로 한 것이다./배후의 책동에 부화뇌동하다
▷ 자연 사실(fact)보다는 허구(fiction)가 판친다.주가, 환율 등 가격변수 움직임도 기복이 심해진다.부화뇌동(附和雷同) 심리와 각종 동조화 현상도 재현된다.<한국경제>
■ 북당 北堂
[북녘 북/집 당]
☞ 남의 어머니의 별칭.
[참고]‘남의 어머니를’높이어 이르는 말 : 母堂, 慈堂,(자당) 令堂(영당), 萱堂(훤당).大夫人 /남에게‘자기의 어머니’를 이르는 말 : 慈親(자친), 慈浬(자리), 家母, 家慈. /남의 아버지’를 높이어 이르는 말 : 椿府丈(춘부장), 椿府, 椿丈, 椿府大人, 椿庭(춘정), 椿堂(춘당), 家尊, 令尊(영존). / 남에게‘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 : 家父, 家君, 家嚴, 家大人, 家親, 嚴君.嚴親(엄친)
[예문]세월이 여류하니 백발이 절로 난다.뽑고 또 뽑아 젊고자 하는 뜻은 북당에 친재하시니 그를 두려함이라 --김진태
[참고]北堂은 18세기 초 중국 베이징[北京]에 건립된 프랑스 예수회 전교(傳敎) 본부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 북산지감 北山之感
[북녘 북/뫼 산/어조사 지/느낄 감]
☞ 북산의 감개함. 나라 일로 인해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하지 못함
[출전]『시경(詩經)』 소아(小雅)편 북산(北山)
[동]보우지차(?羽之嗟),보우지탄(?羽之嘆)
[내용]북산에 올라가 구기자를 따네. 튼튼한 관리가 아침 저녁으로 일을 하지만.나라 일 끊임없어 부모님이 걱정이네.모든 하늘 밑이 임금님의 땅이며 모든 땅의 물가가지 임금님의 신하이거늘 대부들을 고루 쓰지 않으시어 나만 일하느라 홀로 수고하네.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 장대하나 나라 일 많기도 하네. 다행히도 나는 늙지 않았고 기쁘게도 나는 한창때라.정력이 왕성하여 온 나라를 보살피네.어떤 이는 편히 쉬고 어떤 이는 온갖 고생 다하며 나라 섬기고. 어던 이는 침대에 누워 쉬고 어떤 이는 쉬지 않고 돌아다니네. 어떤 이는 부르짖음도 알지 못하고 어떤 이는 처참히 고생하고 어떤 이는 뒹굴뒹굴 편히 놀고 어떤 이는 나라 일로 급히 돌아치네. 어떤 이는 즐기고 술 마시기에 빠져 있거늘 어떤 이는 처참히 허물 두려워하며 일하고 어떤 이는 들락날락하며 큰 소리 치고 있거늘 어떤 이는 안하는 일 없이 수고하네
[원문]陟彼北山 言採其杞 偕偕士子 朝夕從事 王事靡 憂我父母 或湛樂飮酒 或慘慘畏咎 或出入風議 或靡不事爲
[해설]주(周)나라 유왕(幽王)이 무도(無道)하여 힘없는 백성들만을 끝없는 부역으로 내몰아 부모님을 제대로 봉양할 수 없음을 풍자하여 노래한 시이다. 고대에 성품이 포학했던 군주들은 자신들의 영토 확장을 위해 가난한 민초들까지 전쟁터로 내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기약 없는 싸움을 하는 백성들은 전사하는 두려움도 두려움이지만, 고향에 두고 온 부모님과 처자식 걱정에 눈물 마를 날이 없다
■ 북창삼우 北窓三友
[북녘 북/창 창골/석 삼/벗 우]
☞북쪽 창의 세가지 벗, 거문고(琴), 술(酒), 시(詩)를 뜻함
[내용]오늘 북창아래에서 무엇 하느냐고 자문하네. 아! 세 친구를 얻었으니 세 친구는 누구인가? 거문고를 뜯다가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다 문득 시를 읊으니 세 친구가 번갈아 서로를 끌어주어 돌고 돎이 끝이 없구나.
[원문]今日北窓下 自問何所爲 欣然得三友 三友者爲誰 琴罷輒擧酒 酒 輒吟詩 三友遞相引 循環無已時
[참고]歲寒三友[세한삼우]--松,竹,梅[소나무,대나무,매화]/ 문방사우 文房四友--글을 쓰는 네가지 벗. 종이, 붓, 벼루, 먹.(紙筆墨硯)
■ 분골쇄신 粉骨碎身
[가루 분/뼈 골/부술 쇄/몸 신]
☞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진다.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다. 또는 남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음.
[유]犬馬之勞(견마지로) : 임금이나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노력. /盡忠竭力(진충갈력) : 충성을 다하고 힘을 다함. /驅馳(구치) : 말이나 수레를 몰아 빨리 달림. 또는 남의 일을 위하여 힘을 다함.
[예문]무투표당선과 3선의 영예를 안겨준 주민들에게 분골쇄신의 자세로 보답하겠습니다. 침체된 관광지 활성화를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각계 요로에 전달하고 해결책을 이끌어냄은 물론 낙후된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속리산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각종 행사와 이벤트, 아이디어 개발, 민자유치등을 위해 발로 뛰는 의원이 되겠습니다.--당선사례
■ 분서갱유 焚書坑儒
[불사를 분/책 서/묻을 갱/선비 유]
☞ 책을 불사르고 선비를 구덩이에 파묻어 죽임/학자,학문이 정치적 박해,탄압을 받음
[출전]『史記』/『십팔사략(十八史略)』
[내용]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는 주왕조의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의 군현제도를 채택했다.8년후 함양궁의 찬치에서 순우월이 당시 군현제도를 봉건제도로 개체할 것을 진언했다.시황제가 신하들에게 가부를 묻자 군현제의 입안자인 승상 이사는 옛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 비난하는 자가 있으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고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한 책과 진나라 역사서이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버릴 것을 진언한다.이 진언이 받아들여져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모두 불태워 졌다.이듬해 아방궁이 완성되고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을 닦는 方士들을 불러 후대했다.그들 중 노생과 후생이 재물을 사취한뒤 시황제의 부덕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추자 시황제는 매우 진노했는데 그 때 시황제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아 가뒀다는 보고를 받고 460명이나 되는 많은 선비들을 모두 산채로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다.
[원문]臣請史官非秦記皆燒之. 非博士官所職, 天下敢有藏詩.書.百家語者, 悉詣守.尉雜燒之...諸生傳相告引, 乃自除犯禁者四百六十餘人, 皆之咸陽, 使天下知之, 以懲後.
■ 불가사의 不可思議
[아니 불/옳을 가/생각 사/의논할 의]
☞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 야릇함.
[유]微妙(미묘) : 야릇해서 잘 알 수 없음. /神秘(신비) : 보통 이론과 인식(認識)을 초월(超越)한 일. /不可知解(불가지해) : 알 수가 없음.
[예문]
▷ 불가사의하게 전개되는 운명
▷ 인간의 생명력은 불가사의하다|
▷ 선우 중위는 그 양주호가 마치 어떤 커다랗고 불가사의한 괴물처럼 느껴지고 있었다.≪이청준, 이어도≫
▷ 형사들과 노인은 불가사의한 종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는 눈초리로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었다.≪최인호, 지구인≫
■ 불가항력 不可抗力
[아니 불/옳을 가/막을 항/힘 력]
☞ 힘으로 대항할 수 없음 / 외부의 사건에서 거래 관념상의 가능한 주의와 예방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일.
[예문]
▷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 어떻게 생각해 보면 우리 쪽이 이렇게 된 건 불가항력이었는지도 모르지.≪한수산, 부초≫
▷ 여러 차례 항쟁하여 봤지만 목숨만 무수히 잃을 뿐 도무지 불가항력인지라 본조에 들어서는 순순히 복종하여….≪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무단횡단자를 피하기 위하여 불가항력으로 중앙선을 침범했을 경우 중앙선 침범으로 인정되기보다는 안전운전 의무위반으로 적용된다. 중앙선 침범이란 본인이 고의적인 침범 의도가 있었을 때 적용되는 것으로 이 경우와는 무관하다.
■ 불구대천 不俱戴天
[아니 불/함께 구/머리에 일 대/하늘 천] ☞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 죽여 없애야 할 원수
[동]不共戴天之讐(불공대천지수) ,不共戴天
[출전]『禮記』
[내용]: 예기(禮記)는 오경의 하나로 周 나라 말부터 秦漢시대에 유학자의 고례(古禮)에 관한 설을 적은 책이다. 그 중 곡례(曲禮)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아버지의 원수는 더불어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 따라서 세상에 살려둘 수는 없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형제의 원수는 집에 무기를 가지고 올 사이가 없다. 항상 무기를 지니고 다니다가 원수를 만나면 당장 죽여 버려야 한다. 친구의 원수는 나라를 같이 하여 살 수 없다. 마찬가지로 죽여 없애야 한다
[원문]父之讐弗與共戴天.兄弟之讐不反兵.交友之讐不同國.”
[참고] 내 이제야 남의 아비를 죽이는 것이 중한 줄을 알겠노라.남의 아비를 죽이면 남이 또한 그 아비를 죽이고 남의 형을 죽이면 남이 또한 그 형을 죽일 것이다.그러면 스스로 제 아비나 형을 죽이지는 않겟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이니라(『孟子』)
[예문]그놈 우리나라로 보아선 불구대천의 원수지만 자기 나라에선 일등 공신이다.≪박해준, 밀항기≫ >
■ 불립문자 不立文字
[아니 불/설 립/글월 문/글자 자]
☞ 문자로써 교(敎)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선종(禪宗)의 입장을 표명한 표어
[동] 以心傳心(이심전심) 敎外別傳(교외별전) 拈 華微笑(염화미소,점화미소) 拈 華示衆(염화시중)
[내용]교가(敎家)의 사람들이 경론(經論)의 문자와 교설만을 주로 하고 불교의 참 정신은 잃고 있다고 보고, 선가(禪家)에서는 참된 불법으로서의 정법(正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以心傳心]이라 하고, 체험을 중요시하여 불립문자·교외별전(敎外別傳) 또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 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선종을 중국에 전한 달마(達磨)에서 이미 나타났었다. 그러나 특별히 강조되었던 것은 당나라 때로서 선종 제6조 혜능(慧能) 아래의 남종선(南宗禪)에서였다.
[참고1]불립문자는 문자를 세우지 말라는, 그러니까 문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문자를 세우지 말라고 했다면 팔만대장경의 그 무수한 문자는 또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립문자는 어디까지나 '문자에만' 의지하지 말라 또는 '문자에만' 머무르지 말라는 의미이다.
[예문]햇살공부 - 햇살은 어떤 색으로 어떻게 떨어질까.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한달음에 내려앉는 선연한 모습.서쪽 하늘 해 빠지는 절망의 벼랑에서 불끈 솟는 대작대기 빛의 높고 큰 힘처럼,그것은 한여름 뙤약볕에 등줄기 까맣게 끄슬러 생채기를 남긴 그림자를 따뜻하게 덥혀주는 언어의 무늬들, 해의 외길 앞에 서서 구름이 가리게 되어 숨길 때 부끄럼으로 제 빛 뽑아내는 햇살.쓰러지고 꺾일지언정 끊어지지 않는 빛의 절개는 공전과 자전에서 터득한 신비로운 발색 반응.그 빛 따라가는 물 속의불립문자 같은 고기떼도 옆구리의 눈부신 비늘을 반짝인다.<전성호>
▷ 내가 또 묻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을 지나가고, 고기는 못에서 뛰는 것이 색이냐 공이냐? 하니, 공이 말하기를, 색도 아니고 공이 아닌 것이 진여(眞如)의 본체이니 어찌 이 따위 시를 가지고 비길 수 있느냐 했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벌써 말이 있으면 곧 경계(境界)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본체라 할 수 있겠느냐? 만약 그렇다고 하면, 유가의 묘한 것은 말로 전할 수 없는 곳이고,부처님의 도는 글자 밖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중이 깜짝 놀라서 나의 손을 잡으며, 당신은 시속(時俗)의 선비가 아니로구려.
[참고2]不立文字 敎外別傳說의 由來 - 우리나라 禪家의 전설은 대개 중국 선종의 설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는 것으로 '禪宗系譜說'이 그러하고 '東土初祖說'이 그러하며 이제 이 '不立文字 敎外別傳說'도 그러하다. 다른 문제는 且置하고 이 不立文字의 문제, 곧 선종에도 所依經이 있었던가 하는 문제의 발단이 된 此說의 유래를 잠시 더듬어 보기로 한다.불교라 하는 것은 교주 釋迦牟尼佛의 敎說;敎訓;敎示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그 교설 등이라 함은 言語와 文字로 된 經과 律 外에는 따로 없는 것이며, 이러한 것 중의 어느 것을 신봉하는 것이 다름 아닌 불교의 諸宗이므로, 만약 이것들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불교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선종에서는 經;律‥論 三藏을 所依로 하지 않고서 무엇으로써 어떠한 근거에서 自宗을 불교라 주장하는가. 선종의 견지에서는 釋迦牟尼佛이 자기의 사상을 전하는 방법에는 二種이 있으니, 그 하나는 言說에 의하는 것으로 이 방법은 鈍根劣機에 대한 방법이요, 그 둘째는 言說文字에 의하지 않고 師資가 직접 以心傳心하는 방법으로서, 이 방법은 殊勝한 근기에게 전하는 방법이다. 前者는 곧, 종교이요 후자가 곧, 선종이라는 것이다.그러면 이 以心傳心 敎外別傳說의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拈華微笑 敎外別傳說이다. 선종의 宗旨는 경론 等이나 기타 언설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설이외에 師資가 相接하여 以心傳心의 방법으로써 불타의 正法眼藏을 상전한다는 것인 바 이 기원은 벌써 교주 석존으로부터 시작되어 석존이 摩訶迦葉에게 拈華微笑의 방법으로써 정법안장을 전하신 것을, 그 후 27祖가 모두 以心傳心의 방식으로, 代代 전법을 하였다 하여, 그 純一無雜性을 敎家에 대하여 자랑한다. 그러면 이 以心傳心說을 전하는 문헌은 과연 무엇인가. 중국 宋代 道原의 作인(서기 1004년 作) '景德傳燈錄'에는 아직, 이 설의 기록이 없다.k 此書는 구체적인 선종사로서 가장 중요한 문헌이다. 중국 선종의 初祖라 하는 達磨大師가 東來한 것은 서기 478년으로 추정되는 바, 이보다도 526년이나 後世에 저작된 이 '傳燈錄'에도 선종 別立의 근거인 拈華微笑, 以心傳心說의 記載가 없다. 이 '傳燈錄'에 의하여 저작된 宋 契嵩의 '正宗記'(1060년 이전 作)에는,혹 말하기를 여래께서 靈山會中에서 捻華示之하시니 迦葉이 微笑하였는지라, 곧 이에 付法하셨다. 또 가로대 여래는 법을 多子塔 앞에서 대가섭에게 付하셨다 라고 하니 世는 모두 이로써 전수의 實이라 하나, 그러나 이는 아직 그 출처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稱取하나 또한 果敢히 써 審詳하지 않노나.(同書 卷1末)라고 하여 오히려 그 설을 전적으로는 取信하지 않았다. 이에 의하여 본다면 宋代에 들어와서 비로소 이러한 전설이 점차 떠돌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著作된 '建中靖國續燈錄' 卷1에 의하면(1101년 作), "四十九年 三乘顯著, 拈花普示 微笑傳"이라 있고 또 그 후(1183년)에 저작된 '聯燈會要' 卷1에 의하면 비로소세존이 在靈山會上하사 拈花示衆하시니 衆皆默然이나 唯迦葉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사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 微妙法門하니 不立文字하고 敎外別傳하노라 하시고 付囑摩訶迦葉하시다.라고 하여, 점차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 拈花微笑 敎外別傳說의 근원적인 근거는 과연 무엇이었던가. 宋代 智胎의 著 '人天眼目'(1188년 作) 제5 宗門雜錄에,王荊公 (王安石)이 佛慧泉禪師에게 問云, 禪家에 所謂 拈華는 出在何典이닛가. 泉云 藏經에도, 亦不載로다. 云曰 余頃在翰林苑하여 '大梵天王問佛決疑經' 三卷을 보고 因閱之하니 經文所載가 甚詳하더이다. 梵王이 至靈山하여 金色波羅花를 佛께 드리고 몸을 버려 床坐를 삼아 佛께 請하여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하시게 하니 세존은 登坐하사 拈花示衆하시니 人天百萬이 모두 어찌할 바를 몰랐으나 홀로 金色頭陀가 있어 破顔微笑하니 세존이 云하되 "吾有正法眼藏 涅槃妙心, 實相無相하니 分付摩訶迦葉하노라"라고 이 經은 帝王이 事佛하여 請問하는 것을 多談하였는지라 所以로 秘藏되어 世에 듣는 자가 없었다.라고 되어 있다. 곧 王安石 時代에는 이 '大梵天王問佛決疑經'이라는 經이 翰林苑에 있었다 하나 그러나, 이 경이 대장경 중에 편입되어 있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아무 經錄上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로써 미루어 보면 이 경은 위경임이 명백하고 또 따라서 拈花微笑 敎外別傳說도 후세인들에 의해 造된 일종의 망설임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위의 전설이 造되게 된 동기는 宋에 이르러 선종의 宗勢가 隆盛하여지니 다른 敎宗佛敎에 그 독특성을 誇張할 필요에 의하였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뿐 아니라, 선종의 28祖의 系譜說도 역시 후세에 造된 것으로 (이에 詳論의 餘裕가 없어 省略하나) 선종으로서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이러한 전설들을 造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 것은 達磨에 의해 禪法이 初傳된 이래 300여년간에 선이 一宗으로서 堅固한 지반을 닦아서 日就月盛하여 가는 途上에 있으므로 自宗의 系譜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할 필요가 28祖說과 또 自宗의 純粹佛敎性을 표시해야 할 必要上 敎外別傳說을 구상해 내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특히 중국 唐代에까지 융성하였던 모든 교종들은 다 각각 그 所依의 경론이 분명하여 불교로서 행세하는데 유력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선종만이 그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이류를 밝히기 위하는 同時에 타종의 所依經論보다도 오히려 더 유력한 근거설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扶宗的 운동은 中唐 이후 宋代의 일이었고 禪法을 初傳한 達磨大師로부터 神秀?iddot;慧能에 이르는 禪宗成立時代에 있어서는 그러한 전설이란 전연 없었던 것임에 주의해야 한다.
不立文字의 意義 -중국의 圭峯 宗密의 (780-841) '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然達磨西來唯傳心法 故自云我法 以心傳心 不立文字"라 하여 있고, 또 '景德傳燈錄' 楊億의 序에도 "首從於達磨 不立文字 直指心源 그러나 이러한 扶?이라 하여 문자를 不立하였다는 점에 강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들릴는지 모르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以心傳心'한다는데, 그 진정한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 대개의 禪客들은 不立文字에 禪宗의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지 않는가 한다. 그 증거가 대개의 禪客들이 三藏을 무시해 온 것이며 문자를 경시하는 標本으로 六祖 慧能大師의 無識을들고 있다. 그러나 六祖가 경을 중시한 증거는 있을지언정 무시한 증거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선종의 宗旨인 바 이 三句 중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목적이요 不立文字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한 수단방법이라고 보아야 한다. 宋代 睦庵 善鄕의 編, '祖庭事苑' 제5 單傳에 傳法祖師는 初以三藏敎로 兼行이러니 後에 達磨祖師는 單傳心印하여 破執顯宗하였나니 所謂 敎外別傳하여 不立文字하고 直指人心하여 見性成佛케 하였나니라. 然이나 不立文字의 失意者多하여 往往謂하되 屛去文字하고 以默坐로 爲禪하니 斯實吾門啞羊耳요 且萬法紛然하니 何止不立文字리오. 殊不知道猶如通하고 豈拘執一隅아. 故로 卽 文字하면 而文字不可得이니라 文字旣爾하니 餘法도 亦然하리니 見性成佛의 所以也니라.라고 하여 있는 바와 같이 不立文字의 眞意는 破執顯宗하는데 있는 것이다.(이상의 모든 문헌에 모두 達磨大師부터가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같이 말하고 있지만 이하에도 논증하는 바와 같이 달마는 결코 그런 문구를 사용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문자를 경시하는 태도를 취한 일도 없었다.) 곧 불교의 근본 목적은 어떠한 宗임을 막론하고 見性成佛에 있지 아니한 宗이 없다. 경론상에도 이러한 취지가 명론되어 있는 것이지마는 중생들은 경론의 이와 같은 근본 취지는 망각하고 도리어 경론의 言說文字에만 집착하므로 이것을 破하기 위하여 不立文字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를 屛去하고 默坐하는 것만이 선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啞羊에 불과하다. 만약 문자에 局執하는 자를 위하여 不立文字를 주장한 것이라 하면 어찌 默坐 禪의 局執은 파하지 않을 수가 있으리오. 要는 見性成佛에 있는 것이지 문자를 세우고 좌선을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일본 曹洞宗 螢山紹瑾의 語 '十種勅問奏對集'에問三曰, 禪家所謂不立文字 敎外別傳矣라 하나 雖然이나 一大藏經이 皆是文字요 禪家語錄도 亦是文字이어늘 若無文字하면 佛祖의 言敎가 依何하여 流布末世耶아.師曰 文字는 是魚兎筌蹄也니 若得魚兎하면 則筌蹄는 渾是無所用也니다. 修多羅敎는 標月之指也라 若觀月하면 則指亦無所用也나 然이나 人皆認筌蹄하여 不得魚兎하고 認指頭하여 不觀月하니 故로 曰, 不立文字也니다.라고 奏答하고 있다. 經律論이 言語文字인 것은 사실이다. 문자가 魚兎를 잡는 筌蹄와 같은 것이요, 명월을 가리키는 手指와 같은 것도 또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魚兎를 잡고 명월을 보기까지에는 그 筌蹄와 手指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魚兎를 이미 잡아 마처고 명월을 이미 보아 마친 후에는 筌蹄와 手指가 무용지물로 되어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종교적 실천이 선이나 佛에게는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이 魚兎를 已獲하고 명월을 已觀한 사람에게는 筌蹄와 手指는 필요가 없는 것이지마는 아직 魚兎를 잡지 못하고 명월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緊要不可缺의 도구인 것이다. 단 筌蹄와 手指만을 절대적인 것으로 알고, 魚兎와 明月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不立文字의 경구가 또한 절대 필요한 것이다. 곧 이러한 의미에서 不立文字를 본다면 선과 敎問에 아무런 問隔도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우리 나라 禪客 중에는 무식이나 다름이 없는 상식으로써 이상에 논증한 禪宗의 역사적인 사실을 무시하고 不立文字라 하여 불교의 교학을 만약 등한시한다면 교주 釋尊 49년간 苦口 寧의 설법에 대한 죄인이 될 뿐 아니라, 자기의 智見 啓發에도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禪宗의 所依經에 대하여(金東華)>
[참고3]도올 『碧巖錄』 講話 제1화 양무제가 달마를 만났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