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음완보(微吟緩步)
김나영 시인의 새 시집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를 읽다가 시 ‘로마로 가는 길'에 눈이 멎는다. “천천히 제발 좀 처언처어어니 가자고 이 청맹과니야. 너는 속도의 한 가지 사용법밖에는 배우질 못했구나. 여태 속도에 다쳐 봤으면서 속도에 미쳐 봤으면서, 일찍 도착하면 일찍 실망할 뿐….” 정미조씨의 신곡 ‘시시한 이야기'를 다시 포개 읽는다. “앞서 가는 사람들 여러분, 뒤에 오는 사람들 여러분. 어딜 그리 바삐들 가시나요. 이길 끝엔 아무것 없어요, 앞서 가도 별 볼 일 없어요, 뒤에 가도 아무 일 없는 걸요. (중략) 가다 보면 결국은 알게 되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마지막은 시시한 걸.”
시간은 물속에 고여 있는데, 마음의 부산함이 좀체 가시질 않는다. 고등학교 때 배운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에서는 “미음완보(微吟緩步) 하여 시냇가에 혼자 앉아, 명사(明沙) 깨끗한 물에 잔을 씻어 부어 들고, 청류(淸流)를 굽어보니 떠오느니 도화(桃花)로다”라고 했다. 미음완보는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는다는 말이다. 숲 그늘로 들어서면 온통 농담(濃淡)이 다른 초록 세상이다. 뒷짐을 지고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다가 다시 느릿느릿 걷는다. 쏟아지는 새 소리 물 소리에 귀가 활짝 열린다.
지금 우리에겐 혼잣말하며 느릿느릿 거니는 미음완보의 시간이 필요하다. 종종걸음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권구(權榘·1672~1749)의 ‘임거잡영(林居雜詠)’ 제5수는 이렇다. “낮잠을 갓 깨어도 문은 늘 잠겨있어, 지팡이 짚고 작은 동산 사이로 향해간다. 읖조리며 느릿 걷다 이따금 앉았자니, 한가한 이 모든 일이 한가함을 혼자 웃네.(午睡初醒門常關, 扶藜起向小園間. 微吟緩步時還坐, 自笑閒人事事閒.)”
또 제6수는 “부자가 더욱 부자 되려 하니 마음 항상 근심겹고, 가난해도 가난 근심 않으면 즐거움이 넉넉하다. 묻노라 계손(季孫)이 만종(萬鍾) 재물 누렸어도, 안연(顏淵)의 단사표음(簞食瓢飮) 그 즐거움 어떠한가?(富求益富心常戚, 貧不憂貧樂自饒. 借問季孫萬鍾享, 何如顔氏一簞瓢.)”이다. 조금 부족하고, 많이 힘들어도 마음먹기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달리기만 하면 끝에 남는 것이 없다.
//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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