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산 부사 시절 다산이 고을의 토지문서를 살펴보았다. 100년 사이에 보통 대여섯 번 주인이 바뀌고, 심한 경우 아홉 번까지 바뀌었다. 다산이 말했다. "창기(娼妓)는 남자를 자주 바꾼다. 어찌 내게만 유독 오래 수절하기를 바라겠는가? 토지를 믿는 것은 창기의 정절을 믿는 것과 같다."
부자는 넓은 밭두렁을 보며 자손을 향해 자랑스레 외친다. '만세의 터전을 너희에게 주겠다.' 하지만 그가 눈을 감기도 전에 그 자식은 여색과 노름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만다. 다산이 제자 윤종심(尹鍾心)에게 준 증언(贈言) 속에 나온다.
글의 문맥이 천주교 교리서 '칠극(七克)' 2장 '해탐(解貪)'의 내용과 흡사하다.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탐욕스레 재물을 모으는 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애를 씁니까?" "제 자식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아들은요?" "자기의 자식을 위하겠죠." "이렇게 해서 끝없이 되풀이해도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은 없군요." 이어서 말한다. "세상의 재물은 나의 재물이 아니다. 다만 내 손을 거쳐가는 것일 뿐이다. 앞서 이미 많은 사람을 거쳐서 이제 내게 온 것이다(世財非我財, 惟經我手. 先曾已經多人, 乃今及我)." 세간의 재물은 잠시 맡아 보관하는 것일 뿐, 천년만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안 하는 짓이 없고, 못 할 일이 없다.
강진 석교리 사람 황인태가 당호를 취몽재(醉夢齋)로 짓고 글을 청했다. 다산은 그를 위해 '취몽재기(醉夢齋記)'를 지어 주었다. '취한 사람에게 취했다고 하면 원통해하며 자기는 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꿈꾸는 사람은 깨기 전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정말 병이 위독한 사람은 자기가 병든 줄을 모른다. 그러니 스스로 취했다고 하고, 꿈꾼다고 하는 사람은 술과 잠에서 깨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산의 이 말도 '칠극' 1장 '복오(伏傲)'와 2장 '해탐' 편에 그대로 나온다. 배교 이후 강진 유배 시절에도 다산은 천주교 교리서의 가르침을 놓지 않고 있었다. 다산이 제자들에게 내린 수많은 증언은 '칠극'의 화법과 참 많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