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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 가는 길, 잠시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터이니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겹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 바둑돌이 놓여지고 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신용목
여행에서 돌아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기억에 남는 것을 챙겨보면 이름난 공간들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맞닥뜨렸던 순간들인 경우가 많다. 한 개인에게 죽기까지 지워지지 않는 기억 또한 예기치 않게 겪게 되는 삶의 순간들임을 환기해보면 찰나와 영원은 일맥(一脈)인 셈이다. 우연히 버스 유리창에 비친 어느 다방의 풍경 속에서 질문이 움튼다. 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저 '앳된 여자'는 왜 저 풍경 속에서 손톱을 다듬고 있어야 하는가? 물론 그 '여자'의 평범할 수 없는 삶의 안팎이 직감으로 스쳤으리라. 그 답은 간단하지 않고 섣불리 결론 내릴 수도 없다. '나'의 삶이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중간에서 잠시 다방 창문에 비친 까닭을 설명할 수 없듯이. 마침 다방 위층은 기원(棋院)이다. 온갖 생의 은유가 펼쳐졌다가 지워지는 현장이다. 그 위로는 비행기가 지나간다. 다른 세계, 미지의 세계로 가는 행로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