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외통프리즘 2008. 9. 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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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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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있습니까?’

갓 탄 승객이 창가에 앉은 승객에게 옆자리 통로 쪽 빈자리를 턱으로 가리키며 정중히 묻고는 짐짓 좋은 응답이 기대되는 듯 손을 등받이에 대고 독촉하는 몸짓을 취할 때, ‘예!? 있습니다.’ 하고 창가의 손님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서서 묻는 승객은 실망한 눈빛과 의아한 고개 짓을 몸에 담더니 머리를 극적이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자리를 쓸 듯이 훑었지만 빈자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승객은 몇 사람과 함께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버스가 출발했는데도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보자 다시 물었다.

 

‘자리 있습니까?’

아까부터 눈독을 드리던 승객이 따지듯 물었다.

 

‘아 있다고요!’

이번에는 창가에 앉은 승객이 귀찮단 듯이 내 뱉는다.

 

버스는 어느새 읍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서있는 승객은 혹시 시내를 벗어난 어느 지점에서 자리 임자가 탈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스는 읍내를 완전히 벗어나고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예의 그 자리를 노리는 승객이 얼굴을 붉히면서 ‘이보시오! 이때까지 타지 않는 손님자리를 왜 도맡아놓고 있소!’ 하고 고함을 질렀다.

 

‘내가 언제 자리를 도맡고 있었소? 빈자리 옆의 승객도 화를 내며 맞받고 있다.

 

"아! 댁에서 '자리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요 보시다시피 자리가 있습니다."

 

‘?’

섰던 승객이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 큰 엉덩이를 쐐기 박듯이 집어넣는다. 창가의 승객은 차창 넘어 보리밭을 쏘고, 비집고 앉은 승객은 개선장군의 위세로 뒤를 보며 손님들의 눈을 훑고 있다.

 

둘 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순수 우리말의 의사표현인데도 꽉 막혀 전혀 소통되지 않았던 것은 그중 한사람이 우리의 정서를 외면하고 말의 뜻만 고집함으로써 간교한 거부의사를 나타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리 앉아있던 옆 승객이 ‘없습니다.’ 또는 ‘자리는 있는데 사람은 없습니다.’로 친절했으면 될텐데 아마도 거북스런 체구 때문에 거절하고 싶었는데 그럴순 없고 그렇다고 반길 수도 없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이때, 각자에게는 말마디의 허물이 없음을 볼 수 있고 우리의 의사소통에서 말이 온전할 수 없음도 알게 되고, 또 말은 그 주고받는 양자의 감정 교류가 우선함을 보게 된다.

 

이 경우 말은 지극히 간단한 의사조차 반영하지 못하고 역반응의 구실까지 했으니 말의 위험은 극에 달했다. 짧은 한마디가 어쩌면 그렇게 쌍 극의 의미를 담는 것일까? 입을 연다는 것은 불을 뿜는 것과 같다.

 

엉덩이를 붙이는 공간은 최소한의 것이다.  자리는 우리가 나서 죽을 때까지 떨칠 수 없는 공간적 부담이며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부여받아 누릴 권리이다.

 

우리는 어딜 가든 앉을 자리의 내 몫이 있어 차지할 부피와 공간이 허용돼야하련만 자연을 마다하는 인간의 이기에는 이런 우리의 천부적 권리마저 무시하고 말살 당한다. 그것은 문명의 이기를 생활수단으로 받아드리는 우리가 마땅히 치르는 대가이며 침해를 감수하려는 의지의 소산일진대 이 시대를 걸쳐 사는 우리의 각오가 여기까지 미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어려운 세태다.

 

 

이런 시대에 몸담은 작은 알맹이인 내 주제로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여기 고스란히 물려있다.

 

연로한 장모님의 나들이를 돕는 일 중의 한가지인 버스 자리 잡기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고향가족을 떠난 후의 유일한 봉사다.

 

기차가 없는 이곳의 교통은 언제나 그렇듯이 원근 노선의 만원버스로 북새통이다. 마중하고 배웅하고 자리 잡는 사람들로 진종일 들끓는다.

 

나는 장모님의 ‘사위네 나들이’가 편안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고향의 어머니를 먼저 생각해야했고 같은 시각에 고향의 어머니를 누군가 이렇게 보살피리라는 생각이 앞서서 기쁨에 넘치고, 서슴없이 ‘차부(車部)’로 달려가는 것이다.

 

언제나 버스 출발 한 시간 전에 나가야 겨우 알맞은 자리가 차례지는, 끈기있는 '자리 잡기'의 과제는 내가 이곳에 있는 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새벽을 뚫고 달리는 차안에서 ‘자리 있습니까?’ 의 물음에 비어있는 자리라도 ‘자리 없습니다.’의 반대말을 기억하시길 당부 드린다.

 

장모님은 일본에서 돌아오신 귀국동포이시니 우리의 정서를 이해 못하시기 때문이다. 버스 자리는 우리 일상의 자리를 가로채서 갖고 있다고 생각할 때 요지경속에 들어있는 느낌 같아서 되씹어본다.

 

그야 달구지를 탄다면 자리 잡기나 공간시비는 전혀 없을 것이다.  버스는 시간을 돈으로 산 꼴이어서 그렇다고 친다면 시간 또한 우리의 작위 범위의 것이 아닌데도 돈 주고 다투고 매달리니 도무지 어떻게 된 셈판인지 아리송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우리는 제자리인 것이고 우리 몸이 차지하는 부피 또한 제자리인 것을 괜스레 들끓는다.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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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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