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2

외통넋두리 2008. 10. 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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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2

5549.040101 회귀 2

아버지는 날밝은 때에 대문을 들어서시는 일이 없으셨다. 어둠이 짙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때까지 무엇인가를 둘러보시며 허술함이 없는지 살피시는 모습이 내 작은 눈에도 또렷이 비쳤다.

 

언제나 세상을 통틀어 감싸 다독거리고 나서야 발걸음을 들이시는, 마치 세상의 마지막 사람이 세상일의 마감을 도맡은 사람처럼 한 뼘의 틈도 한 알의 허실도 없어야 집으로 드실 듯이, 아버지는 그렇게 내게 비쳤다.

 

이렇게 어둠과 싸우시는 아버지는 늘 어슴푸레한 모습으로만 보이셨다. 언제나 어둠에 밀려서 들어오셨기에 우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명절 때야 똑바르게 볼 수가 있었다.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온 내 성장과정에서 어둠과 싸우는 버릇은 어느새 내게로 전수되어 내 생활에서 예사로운 일로 여겨 그 뒤를 되밟아 가는 버릇이 붙었다. 아니 아예 유전되었는지도 모르는, 이 어둠의 퇴근길이 토요일도 모르는 고질병이 되었다.

 

아무튼 내 일터에서 멀쩡한 대낮에 직장의 정문을 나서기란 어딘가 빈 것 같아서 머리를 긁적이게 된다. 누군가가 들어 닥치면서 일을 청할 것 같기만 하고, 무엇을 잊고 나서는 것 같기도 하여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당장의 일이 없으면 내일 일이라도 생각하기로 하고 그대로 주저앉는 습관이 붙었다. 그래서 언제나 문밖을 나서면 가로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늘 단짝으로 행동하는 동료는 오늘도 어제같이 나와 함께 마지막 불을 끄고 열쇠를 수위실에 맡기고 나섰다. 가는 방향은 처음부터 다르지만 함께 한동안을 걷는 길이 예외 없이 같은 길이다.

 

집에 가려면 한 시간을 들여서 가야하고 걸어서 종로거리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련만 삐뚤어진 걸음은 어느새 늘 들르는 시청 앞 다방에 옮겨와 있다.

 

한기를 느낄 만큼 손님이 없다. 우리가 들른 것이 퍽 반가운 모양이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우리의 차림을 알아보는 주인은 반기면서 난로가로 안내한다. 석유난로의 코일이 벌겋게 달아 있지만 방은 썰렁하다. 통금은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았다.

 

난로 불은 꺼질 줄 모르고, 피어오르는 열기에 익은 이야기는 꽃 봉우리를 피어 낸다.

짙고 향내 나는 말 꽃은 우리의 행각이 벌써 몇 달째임을 알게 한다. 출근하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허물없는 이야기의 중심이 사생활로 옮겨 파고들더니 마침내 음향을 타고 감미로운 밀원(蜜源)으로 인도된다. 기다렸다는 듯이 반겼던 주인은 아직 우리의 의사를 입 밖에 물을 수 없어서인지 마냥 불꽃만 바라보고 애꿎은 발바닥만 비벼댄다.

 

‘오늘 동생이 올라왔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내고는 우리의 반응을 본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간다. 허지만 동료는 내색을 하지 않고 그냥 내 얼굴만 건너다보고 피안의 불처럼 스치고 만다.

 

내가 주인의 눈을 훑는 것조차 동료는 무심한데, 보아서는 여기까지가 동료의 몫인 것 같고, 여기로부터 내가 바톤을 받아야하는지가 아리송하다.

 

나도 동료처럼 모르는 체 해야 하는지 잠깐 망설여진다. 그러다가 이내 주인의 눈빛을 확인했다. 그는 모든 것을 포용하듯이 감미로운 입놀림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통금이 아직은 시간 반이나 남았네!?’ 그 의미를 알아차린 내가 얼른 대답했다.

 

‘아직 두 시간은 족합니다.’ 시계를 보면서 엉뚱한 말을 늘어놓는다.

 

시계는 열시 반이다. 가게의 문을 닫으려면 아직도 한 시간이나 더 있어야 하는데 주인은 주섬주섬 점포를 간추리기 시작하고 우리는 떠나갈 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오늘은 일직 들어가서 안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겠네?’ 옆의 동료가 말하지만 내게는 잘 어울리는 연극 팀 같이만 느꼈다.

 

말은 없되, 의미는 오가고, 불은 붙되 옮겨 지펴지지 않는다. 함께 걸어가던 동료는 버스 정거장으로 가는 나하고 갈렸고, 주인은 같은 방향의 버스를 타야 집에 간다면서 뒤를 따른다.

 

그리고 발자국을 좁힌다. 그런 다음 ‘열두시에 집에 오는 동생이 열쇠를 갖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시간을 어디서건 보내야 하는데.’ 이건 내가 한 사람의 숙박비를 부담해야하는 꼴이 되게 생겼고 그것은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주인은 빈약했다. 이국적인 외모와는 영 딴판으로 빈약했다. 그래서 자기를 알기 때문에 궂은 날 비설거지 하듯이 챙기며 동생을 팔지도 않은 채 그냥 담담히 사라졌나보다.

 

주인은 비 오는 날 북데기 타듯 열기가 없었다. 통금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곰곰이 생각한다.

 

 

어둠을 젖히고 대문을 들어서는 아버지의 흰 중의잠방이는 어둠에서도 빛을 냈지만 내 검은 양복은 어둠과 어울려서 깜깜한 대문을 들어설 것이다. 아버지는 어둠을 뚫는 빛이 사뭇 다르고 아버지의 설거지는 지구를 다독거리셨다. 인생을 개키고 접듯이 진지하셨다. 그런데, 어둠이 어둠을 안고 들어서는 나는 비를 맞히고 주위를 흩으려 놓으며 북데기처럼 얽혀진 모습으로 대문을 들어선다.

 

어둠이 나를 삼켜서 빛을 볼 수 없다. 칠 흙 같은 어둠이다. 가없는 어둠이 나를 삼켰다. 어둠에 밀려 대문을 들어서는 대물림 버릇에 상수(常數)가 될 작은 불빛은 없는 것일까?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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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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