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27대 임금 덕만은 시호가 선덕 여 대왕이다. 성은 김씨이고, 아버지는 진평왕으로, 정관 6년 임진 년(632년)에 왕위에 올라, 나라를 16년 동안 다스리면서, 뛰어난 지혜로 미리 알아낸 일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 일은 이렇다.
중국의 당 태종이 붉은색, 자주색, 흰색으로 그린 모란 그림과 그 씨앗 3되를 보내오니, 선덕왕이 꽃 그림을 보고 말했다.
"이 꽃은 틀림없이 향기가 없다."
그리고 이내 뜰에 심었더니, 그 꽃이 피어서 떨어질 때까지 과연 그 말과 같이 향기가 없었다.
두 번째 일은 이렇다.
엄동설한의 겨울에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개구리 떼가 모여 사나흘 동안 울어댔다. 그러자 문무대신들이 이상스럽게 여기며 선덕왕에게 물으니, 왕은 각간 알천, 필탄, 등의 장수에게 급히 명을 내려, 정예 군사 2천을 뽑아 서울(서라벌) 서쪽으로 급히 가서, 여근곡(女根谷)을 탐문하면 반드시 적병이 있을 터이니 덮쳐서 일망타진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두 각간이 왕명을 받고 각기 군사 천 명씩 거느리고, 서울(서라벌) 서쪽으로 탐문 하니, 부산 아래에 과연 여근곡이 있는데, 이미 백제 병사 5백 명이 그곳에 숨어서 신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선제공격으로 일망타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백제 장군 우소란 자는 남산 고개 바위 위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포위해 쏘아 죽였다. 또한 후속 지원군 1천3백 명이 오는 것마저, 매복하고 있다가 공격해서 대승을 거두었다.
셋째 일은 이렇다.
선덕왕이 평소 건강하여 병이 없을 때, 여러 신하를 모아놓고
이러한 말을 하며 부탁하였다.
"아무 해(年), 아무 달(月), 아무 날(日)에 내가 죽거든, 도리천 가운데 장사를 지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신하들이 그 위치를 자세히 몰라 어느 곳인가 물으니, 왕은 이렇게 말했다. "그곳은 낭산(남산) 남쪽이니라."
과연, 선덕왕이 예언한 그 달, 그 날에 이르러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왕의 유언을 받들어 낭산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그 후 십여 년 뒤에 문무대왕이 선덕왕의 무덤 아래쪽에다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지었다.
불경에 이르기를,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대왕이 신령스러운 줄을 재차 알게 되었으며, 여왕이 살아생전에 예견한 2가지 일을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떻게 모란꽃과 개구리의 두 가지 일을 미리 알아내셨습니까? 하고 묻자.
선덕왕은 이렇게 말했다.
"꽃이 피어있는 그림이었으나,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는 줄 알았다. 그것으로 당나라 황제는 짝 없는 나를 우롱했으며, 개구리는 성난 모습이라 병사의 형상이며, 옥문(玉門)은 여자 성기이다. 여자는 음(陰)이라서 그 색이 희다. 흰색의 방위는 서쪽이다. 그래서 병사가 서쪽에 숨어 있는 줄 알았으며, 남자 성기가 여자 성기에 들어갔으니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쉽게 잡을 줄 알았노라."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선덕왕의 뛰어난 지혜에 탄복했다.
그리고, 세 가지 색깔의 꽃을 보낸 것은 신라에 세 여왕이 있을 줄 알아서인가. 선덕, 진덕, 진성이라는 이들이 세 여왕이다. 당나라 황제도 예지력이 보통이 아닌 능력이 있었다. 선덕여왕 재위 시 영묘사(靈廟寺)를 창건한 일은 양지 스님의 전기(傳記)에 자세하게 실려 있으며, 별기(別記)에서는 "이 여왕 때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라는 구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