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신발

글 두레 2009. 9. 6.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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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신발

낡고 찌그러진 아빠의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우울하고 슬프기만 했습니다. 내가 이런 비참한 마음을 갖기 시작한 것은아빠가 실직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아빠의 실직 이유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하지만 아빠는 그 일로 몹시 괴로워하셨습니다. 주무시다가도  몸을 부르르 떠시는 모습은 마치 활동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생생합니다.

 

실직하신지 3개월쯤 되었을 때 아빠는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전 회사와는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였는지라 아빠에게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았었나 봅니다.

 

입사하신지 1개월이 조금 지나 아빠는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던 출장근무를 자원하셨고 그 후 늘 출장만 다니시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3일 4일이었던 출장이 조금 지나서는  1주일 2주일씩으로 늘어났고, 요즘에는 1달에 한 번씩 겨우 집에 들어오십니다.

아빠가 출장을 다녀오실 때마다 아빠의 구두는 검정색인지 황토색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아빠는 어딘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매일을 걸어 다니심이 분명했습니다. 

그나마 그 구두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본래 낡았던 구두가 어느 샌가 뒷굽도 다 닳고, 앞으로는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구두를 몇 번이나 수선했지만 끝내 더 이상 수선조차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아빠는 가장 값싼 운동화를 사 신으셨습니다.

우리 남매를 키우시느라 구두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운동화 역시 한번 출장을 다녀오시자 금방 낡은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빠의 그 신발을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아빠 생신 때에는 반드시 구두를 선물해 드리리라 다짐을 했습니다.
 

용돈을 따로 받아 모을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학교 오갈 때 버스 타는 대신 걸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금새 2000원이 모였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뻤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수북이 쌓인 은행잎들을 밟으며 중앙청 앞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 중, 저 앞에 웬 키 작은 남학생 한 명이 낙엽을 터벅터벅 밟으며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바로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이었습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동생의 팔을 잡으면서 말했습니다.

"너 왜 자꾸 누나 말 안 듣니? 넌 아직 어려서 걸어 다니면 피곤해서 성적 떨어지니까  반드시 버스 타고 다니라고 했잖니?"

동생이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럼 난 아빠 구두 값을 어떻게 모으란 말이야?"

나는 동생에게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누나가 다 모을 테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라고 누나가 몇 번이나 말했니?"

갑자기 동생이 표정을 바꾸며 물었습니다. "누나, 누난 얼마 모았어? "7500원이란 나의 대답을 들은 동생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모은 거랑 합치면 웬만한 구두 살 수 있겠다. 누나 나 그 동안 2000원 모았어.  나 잘했지?"

나는 동생이 너무 대견스러워 하마터면 대로변에서 울음을 터뜨릴 뻔했습니다. 그 다음 토요일 동생과 나는 동대문 시장에서10000원짜리 구두를 샀습니다.


그리고 예쁘게 포장한 다음 며칠 남지 않은 아빠의 생신일을 기다렸습니다. 아빠가 그날은 꼭 집에 오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입니다.

마침내 아빠의 생신일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먼저 온 동생이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너 왜 그러니? 어디 아프니?" "아빠가 오늘 못 오신대. 그러니깐 구두를 드릴 수도 없잖아. "동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 낡아빠진 싸구려 운동화를 신고 지금도 어느 도시, 어느 길 위엔가를 걷고 계실 아빠를 생각하자 어느새 내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한 방울씩 맺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쉬움의 눈물이었을 뿐  더 이상 슬픔의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빠께 드릴 새 구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좋은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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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외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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