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미얀 계곡 석굴 군
바미얀 석불은 아프카니스탄내에 있는 바미얀 계곡 절벽을 따라 조성되어 있었다. 해발 2,500m 힌두쿠시산맥 자락에 위취했었던 그곳은 예로부터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교통로로 번성했던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것은 과거형으로 쓸 수 밖에 없다. 그 불상은 2001년 탈레반 정권에 의해 파괴되어 버렷기 때문이다. 파괴 전 바미얀 석불
바미안석굴의 석불은 무려53m나 되는 엄청난 거인이었으며,석불입상중 가장 키가 클 뿐더러, 근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석조상중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입상이었다.
파괴 전 바미얀 석불 이 석불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당나라의 현장법사는 이 석불을 ‘황금이 번쩍이는 화려한 불상’이라고 극찬했다. 크고 작은 구멍처럼 보이는 곳은 과거 승려들이 거처했거나, 혹은 석굴사원으로 사용되던 것이다. 왼쪽 옆 절벽 중간쯤에 있는사람들의 키와비교해보면 이 석불 입상의 크기와 규모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남긴 신라의 혜초(慧超)도 772년 이곳을 방문하였다. 중국 당나라의 현장법사(玄裝法師)는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는 바미얀국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신앙이 두터운 마음은 이웃나라보다 더하다. 위로 삼보(三寶)로부터 아래로 백신(百神)에 이르기까지 진심을 다하지 않음이 없고 마음으로써 공경하고 있다 또한 바미안 석불에 대해서도 기술하고 있다. 왕성 동북의 산 귀퉁이에 입불(立佛)의 석상이 높이 1백 4-50척이나 되는 것이 있는데 금빛으로 번쩍이며 보식(寶飾)이 빛나고 있다. 동쪽에 가람이 있는데 이 나라의 선왕이 세운 것이다. 가람 동쪽에 유석(鍮石)의 입상이 있는데 높이가 1백여 척 (실제높이 38m)이다
아프카니스탄은 카니시카왕의 쿠샨왕조가 흥성한 지역이기도 하다. 그리고 중국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던 대승불교가 이 곳을 통해서 북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는 3,700여개의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땅속에 묻혀있는 불교유적은 얼마나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였고 파키스탄이 간다라 미술의 발상지였고 아프가니스탄은 불교의 중흥지이면서 대승불교의 시작점이었다.
이렇게 아프카니스탄 역사의 상징물이자, 900년이상 거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오던 이 거대석상은, 8세기 전후 이슬람 세력이 진출하면서 수난을 겪기 시작하였다. 특히 성상을 인정하지 않는 이슬람원리주의 입장에서는, 이 불상을 인정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8세기에는 폭파공법 같은 것이 없어 전체가 파괴되는 것만은 면하였지만, 안면부는 도저히 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고 말았다. 안면부 옆쪽의 구멍같은 것 역시, 승려가 거처하는 석불사원중 하나였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서 이 석불입상은 존재자체에 위험을 받게 되었다. 세계최대의 마애석불인 바미얀 석불이었지만,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를 신앙하는 탈레반들은 공개적으로 바미얀 석불을 파괴할 것을 공언하기 시작했다.
탈레반이 석불을 파괴할 것을 세계에 공표했을 때 이슬람 국가들의 보편적인 반응은 석불파괴에 대한 반대였다. 그것은 불교유적이지만 인류공동의 문화재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현지인들 역시 큰 석불은 '살살', 작은 석불은 '보만'이라 부르며, 기본적인 애정과 관심이 있음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200년 5월 탈레반 정권은 마치 폐기건축물을 철거하듯이, 폭파공법까지 동원하여 완전하고도 두번다시는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시키고 말았다. 1700년을 유지해 오던 입불상이 파괴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17초도 되지 않았다. 마쓰우라 고이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2003.3.13.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의해 바미안의 고대 석불들이 파괴되었음을 피에르 라프랑스 유네스코 특사를 통해 공식 확인했다
현재 탈레반 정권은 교체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 불상에 대한 복구 논의는 진행중이긴 하다. 한쪽에서는 어렵겠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파편들이라도 다시 모아서 복구를 하자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파괴된 석불 자체가 만행의 증거이기 때문에 교훈으로써라도 후손들에게 파괴된 그대로 남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파괴된 석불의 절벽에는 수십개의 동굴이 파여있었다. 지금은 현지의 주민들이 그 곳에서 생활을 하지만 예전에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승방이거나, 불교관련 상징물이 있는 크고 작은 석굴사원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바미얀에는 몽골리안 계통의 하자르족들이 사는데 이들은 징기스칸의 정복로를 따라
이주했던 몽골의 후예들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파슈툰 족에 근거를 둔 탈레반은 그런 몽골리안 계통의 하자르 족을 상대로 집중적인 인종차별을 일삼았다고 한다. 따라서 그들의 거주지에 있었던 문화유산역시 표적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도 재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논의가 무슨 소용있을까, 그저 단순한 종교적 상징물 이상의 가치를 지닌 이 불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다만 지금은 탈레반 정권의 잔혹했던 독재와 폭정을 증언하는 상징물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일까? 비록 사진상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마치 점점더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탈레반 정권의 지난 이력이 새겨져 있는 것같다./옮긴 글-